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클래식 클래스 196

효(孝),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고, 이밀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촉(蜀)의 제갈량이 나라의 운명을 건 북벌에 나서면서 황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가 충의 표상이라면  제갈량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이밀이 진(晉) 황제 무제가 내린 관직을 사양하며 올린 진정표는 효행의 명문으로 손꼽힌다. 네 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이밀은 관직을 맡으라는 황제의 명령에 까마귀를 예로 들며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까지  곁에서 봉 수 있게 해달라고 진정했다. 할머니에 대한 효심이 구구절절 스며있는 진정표에 황제 무제도 감동해 자신의 뜻을 거두었다. 어린 까마귀가 성장한 뒤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어버이 ..

클래식 단상 2025.01.10

이팝나무 꽃이 필 때면

아파트단지 뒤편 이면도로의 이팝나무가 어느새 가지마다 하얀 꽃을 수북히 뒤집어 썼다. 마치 뜸이 잘 든 흰 쌀밥을 뿌려 놓은 듯하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입하 절기의 이 즈음은 아직 보리수확은 멀고 지난 가을걷이 양식은 거의 떨어진 보릿고개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절대빈곤의 긴 세월 동안 이 땅의 배고픈 백성들은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며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왕자이민위천, 민이식위천) 맹자는 백성들이 물질적 토대인 항산이 없으면 도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항심도 없다고 했다..無恒産者 因無恒心 (무항산자 인무항심) 옛 사람들에게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은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위정자들 또한 백성..

클래식 단상 2024.05.07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소설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그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대문호 토마스 하디의 숭고한 정신과 통찰의 심장이 여기에 묻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극작가인 토마스 하디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하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만은 자신의 고향인 도싯(Dorset)주에 묻힌 첫째 부인 에마 라비니아의 묘에 합장되었다. 자신의 힘든 시절을 함께한 아내였기에 심장만이라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위의 묘비문은 그 합장묘에 새겨진 문장이다. 토머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영..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포청천과 '철면무사(鐵面無私)'

중국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부(開封府, 개봉부)의 부윤이었던 포청천의 본래 이름은 포증(999 - 1062년) 이다. 포증은 공정하고 강직하며 사사로움이 없이 백성들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였기에 백성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는 푸른 하늘과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포청천(包靑天)이라 불렀다. 포청천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일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하고 추호의 비리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자기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던 청백리였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세가들의 탐욕과 비리를 엄하게 다스린 포청천의 일화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소설, 연극, 드라마로 되살아나고 있다. 1994년 국내 TV에서 방영된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그가 던지는 마지막 호령 "개 작두를 대령하라!"는..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갑신정변의 주역 풍운아 김옥균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일본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역 풍운아 김옥균(1851 - 1894년)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다. 김옥균의 일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묘비문은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 또는 유길준이 지은 글로 추정되고 있다. 김옥균은 충청..

그리스 신화 이야기 / 교만함에 추락한 영웅 벨레로폰

벨레로폰은 코린토스의 왕 글라우코스의 아들이다. 그는 실수로 형제인 벨레로스를 죽이게 되었는데, 벨레로폰이라는 이름은 '벨레로스를 죽인 자'라는 의미의 단어 '벨레로폰테스'의 줄임말이고, 그의 본래 이름은 힙노스였다고 한다. 살인죄를 짓고 정처 없이 떠돌던 벨레로폰은 티린스로 가서 그 곳의 왕 프로이토스로부터 살인죄에 대한 사면과 함께 환대를 받게 되었다. 벨레로폰은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벨레로폰에게 반한 왕비 안테이아가 벨레로폰의 방으로 찾아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유혹했다. 그러나 벨레로폰은 애초에 안테이아에게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환대해준 왕을 배신할 수 없어 왕비 안테이아의 고백을 강하게 거절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안테이아는 오히려 벨레로폰..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논어>와 <삼국지>의 '우도할계(牛刀割鷄)'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유(子遊)는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뛰어난 제자 열 명을 일컫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포함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자유는 노나라에서 읍재(邑宰)라는 하급 벼슬에 올라 조그만 읍인 무성을 다스리면서 공자에게 배운 대로 예악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자유를 만나러 무성으로 갔다. 그때 마을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割鷄焉用牛刀 할계언용우도)”라고 말했다. 공자가 이처럼 말한 것은 자유가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훌륭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무성과 같은 작은 읍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본심을 몰랐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