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클래식 단상

이팝나무 꽃이 필 때면

물아일체 2024. 5. 7. 09:48

아파트단지 뒤편 이면도로의 이팝나무가 어느새 가지마다

하얀 꽃을 수북히 뒤집어 썼다. 마치 뜸이 잘 든 흰 쌀밥을

뿌려 놓은 듯하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입하 절기의 이 즈음은 아직 보리수확은

멀고 지난 가을걷이 양식은 거의 떨어진 보릿고개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절대빈곤의 긴 세월 동안 땅의 배고픈

백성들은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며 쌀밥 배불리 먹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왕자이민위천, 민이식위천)

 

맹자는 백성들이 물질적 토대인 항산이 없으면 도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항심도 없다고 했다..

無恒産者 因無恒心

(무항산자 인무항심)

 

옛 사람들에게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은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위정자들 또한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 통치의 요체였다.

백성들은 배 고픔을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 할 지경에

이르면 목숨을 건 난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으로 빈발했던 민란이 그 예라고 할 것이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흥 개혁세력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토지와 세제 등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덕분에 모처럼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백성들은 그 쌀밥을

이성계가 내려준 밥 '이밥(이팝)'이라 부르며 고마워했고,

이밥(이팝)이 잔뜩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이팝나무'도 그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팝나무에 관해 전해오는 속설은 여럿이지만 한결같이 배고픔과

연관된 것이어서 마음을 짠하게 한다.

 

창고에 재물이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

倉凜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창름실이지예절, 의식족이지영욕)

 

제나라 관중의 말이다.

관포지교의 주인공인 관중은 친구인 포숙의 양보와 추천으로

재상이 되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제 환공이 춘추오패의 첫 패주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는 차고 넘치는 풍요의 세상.

이상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며 배고픔에 쌀밥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구 저 편에는 여전히 밥을 굶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거리에서 젊은 학생들이 해외난민 돕기 홍보활동에 열심이지만

오가는 시민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클래식 클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