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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41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작곡가 윤이상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 "處染常淨" (처염상정)" (처한 곳은 더럽게 물들어도 늘 맑고 깨끗하다.) 통영국제음악당에 자리 잡은 윤이상(1917 - 1995년)의 묘비문 글귀이다. 윤이상의 이름 앞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국을 그리워하다 베를린에서 잠든 사람' 등의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윤이상은 14세부터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 위에 축복이 있기를."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1746 - 1827년)의 묘비문이다. 한 문장 안에 그의 삶이 녹아 있다. 페스탈로치는 스위스의 교육학자, 사상가, 교육자로, 주로 고아들의 대부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서 존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스탈로치는 일찍이 루소의 영향을 받아 계몽주의에 심취했..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소설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그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대문호 토마스 하디의 숭고한 정신과 통찰의 심장이 여기에 묻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극작가인 토마스 하디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하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만은 자신의 고향인 도싯(Dorset)주에 묻힌 첫째 부인 에마 라비니아의 묘에 합장되었다. 자신의 힘든 시절을 함께한 아내였기에 심장만이라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위의 묘비문은 그 합장묘에 새겨진 문장이다. 토머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영..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루이 15세의 정부(情婦) 퐁파두르 부인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그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퐁파두르 후작부인 20년간은 처녀로, 15년간은 창부로, 7년간은 뚜쟁이로 보낸 사람 여기 잠들다." 퐁파두르 부인(1721 - 1764년)은 루이 15세의 눈에 띄어 1745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왕의 정부로서 '왕관 없는 여왕'으로 불리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여인이다. 퐁파두르 부인의 묘비문이 될 뻔했던 위 문장은 당시 그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한 평론가가 썼다는 글로, 이 글이 퐁파두르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박인환(1926 - 1956년)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시 의 일부이다.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난 박인환은 부친의 강요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해방을 맞아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서울로 왔다. 그는 서울 종로에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 문인들과..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거기 가봤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선영에 자리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1922 - 2020년) 회장의 묘비 와석에 새겨진 문구이다. 신격호 회장은 평소에 임직원들에게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거기 가봤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신 회장의 "거기 가봤나?"라는 말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자주 했다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신 회장이 이처럼 임직원들에게 "거기 가봤나?"며 현..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갑신정변의 주역 풍운아 김옥균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일본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역 풍운아 김옥균(1851 - 1894년)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다. 김옥균의 일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묘비문은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 또는 유길준이 지은 글로 추정되고 있다. 김옥균은 충청..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던 최고령 의사 한원주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 2020년 당시 94세의 최고령 현역 의사였던 한원주(1926 - 2020년) 원장의 묘비문이다. 한원주 원장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는 아흔네 살 되도록 매일 병실을 돌며 환자를 돌봤으며, 죽기 한 달 전까지 늘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도 옅게 발랐다고 한다. 흰머리를 가리는 검은 모자는 한원장의 상징이었다. 그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어야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곤 했다. 1..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우리는 묘비명이 아닌 음악으로 위대한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기억한다." 음악에 관한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불멸의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 - 1791년)의 묘비문이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주목할 만한 음악적 발자취를 남겼기 때문에 비록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갔음에도 클래식 음악사상 가장 재능이 뛰어난 천재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화려한 명..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소설 같은 삶과 죽음, 로맹 가리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한 바탕 잘 놀았다" 로맹 가리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부분 "한바탕 잘 놀았다. 고마웠다. 그럼 안녕히......"에서 따온 그의 묘비문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1914 - 1980년)는 소설 보다 더욱 소설 같고, 드라마 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가였으며, 어머니는 배우였다. 14살 때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프랑스 니스로 옮겨왔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