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일본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역 풍운아 김옥균(1851 - 1894년)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다.
김옥균의 일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묘비문은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 또는
유길준이 지은 글로 추정되고 있다.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 출생으로, 안동 김씨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그는 개화 선구자인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역관
오경석, 의원 유홍기 등을 만나 개화 사상을 배웠고,
고종의 매제 박영효, 서재필과도 친구가 되었다.
임오군란 이후 수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계몽 운동에 큰 감명을 받아
조선이 근대화되어야 자주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개혁을 주장하였다.
1884년 10월 17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김옥균을
비롯한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들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정변에 가담한 이들 개화파들은 모두 고위 관료였고,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나이였다.
이들은 서구식 근대화를 통해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개혁의 꿈은 고종과 민비가 마음을 바꾸고
원세개가 이끄는 청나라 군대가 개입함으로써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일본 공사 일행을 따라
급히 일본으로 도주했는데, 이때 김옥균의 가족들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다.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은 '이와타 슈사쿠'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며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지내 갑신정변의
동지들조차도 그를 비난하고 멀리했다고 한다.
한편, 조선 조정은 김옥균을 가만두지 않고 자객을 보내
죽이려 했으며, 일본에 송환을 요청하기도 했다.
1894년 주일 청국 공사의 제안으로 청나라로 건너간
김옥균은 상해의 한 호텔에서 조선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을 당하였다.
김옥균은 홍종우가 쏜 권총을 맞고 즉사했는데, 그의 나이
마흔 네 살이었다.
홍종우는 암살 직후 도주하다가 청국 경찰에 체포되지만
김옥균의 시신과 함께 조선으로 송환되었고, 조정에서는
홍종우를 포상과 함께 공직에 등용했다.
조선으로 송환된 김옥균의 시신은 양화진 백사장에서
거열되어 찢겨진 후 머리는 효수되었다.
김옥균에 대한 고종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옥균을 흠모하던 한 일본인은 김옥균의 모발과
옷가지를 수습해 도쿄 하쿠산역 인근 사찰 뒤뜰에
묻었으며, 또 다른 일본인들은 도쿄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그의 가묘를 만들고 묘비를 세웠다.
김옥균의 묘는 충남 아산에도 있는데, 그의 후손이
일본 도쿄에서 옷과 머리카락 일부를 수습해와 조성한
가묘라고 한다.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라는 대의에서 출발한
김옥균의 노력은 결국 비참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김옥균은 당시 조선 정국에 비추어 보면 선구적으로
시세를 파악한 인물이었지만,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을 실패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의 근대화를 빠르게 이루려던 김옥균의 뜻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오히려 개혁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지만, 근대화에 대한 그의 의지와
열정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김옥균의 삶은 개혁의 이상과 시대적 현실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감각과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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