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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물아일체 2024. 1. 8. 00:00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는

박인환(1926 - 1956년)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의 일부이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난 박인환은 부친의 강요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해방

맞아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서울로

왔다.

 

그는 서울 종로에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 문인들과

교류도 했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서정적인

시로 유명하지만, 현실 인식이 아주 강했던 시인이다.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그는 <검은 강>,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해방 직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 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한

작품들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 시의 특색을 잘 보여

주면서도 참신하고 감각적인 면모와 지적 절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박인환의 또 다른 대표 서정시 <세월이 가면>에는

일화가 전해 온다.

 

박인환은 죽기 1주일 전쯤인 1956년 3월 중순에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은성'이라는

술집에서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해진 가수 나애심과

자리를 같이 했다.

'은성'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고 허름한 대폿집이었다.

 

그런데, 박인환이 조만간 자신에게 닥쳐 올  운명을

예상이라도 한 듯 불현듯 종이에 시 한 편을 써

내려갔고, 곁에서 그 시를 읽은 이진섭이 즉석에서

종이에 오선을 긋고 작곡을 했으며, 나애심은

바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친 나애심은 먼저 자리를 떴고, 잠시 후

테너 임만섭이 도착해 그 악보를 받아 들고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랫소리에 술집 근처를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참으로 멋지고 낭만적인 장면이었을 것 같다.

 

그 후 <세월이 가면> 노래는 1970년대를 풍미한

포크 가수 박인희가 리바이벌해 크게 히트를 했다. 

 

박인환은 1956년 3월 17일, 이상(李箱) 시인

기일을 맞아 한국일보에 <죽은 아폴론 ㅡ 이상,

그가 떠난 날에>를 발표하고는 3연방 폭음한 뒤

3월 20일에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박인환은 180cm의 훤칠한 키에 댄디보이(Dandy

Boy)라고 불릴 만큼 말쑥한 양복 차림의 외모로도

유명했다.

 

그는 생전에 조니 워커 위스키와 카멜 담배를 아주

좋아해 그의 장례식에 온 동료 문인들은 그의 관에

조니 워커와 카멜을 넣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박인희가 부른 노래 '세월이 가면')

https://www.youtube.com/watch?v=25oXoRon05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