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복수를 하는데 십 년을 기다린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중국 속담이다.
성급하게 해서는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로,
중국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책략과 맥을 같이 한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어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도광양회는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스스로를 낮추며 때를 기다렸던 일화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어느 날 조조가 "지금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유비 그대와 나 조조 둘 뿐이오."라고 말하자 유비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당시 세력이 약해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던 유비는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척하며 조조로 하여금 경계심을 늦추게
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영웅이라고 하니 놀랄 만큼 황송하다는
시늉을 한 것으로, 천하를 도모하려는 큰 뜻이 없는
것처럼 속이려 한 유비의 계책이라고 하겠다.
도광양회는 1980년대 등소평이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채택하면서 우리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등소평의 도광양회는 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견제와
간섭을 피하면서 내부적으로 국력을 키우기 위한
개혁 개방 정책이었다.
우리가 역사에서 이름을 접하게 되는 많은 인물들은
때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강태공 태공망 여상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위수에서
곧은 낚시를 드리운 채 때를 기다렸다.
그는 결국 주 문왕에게 밭탁되어 주나라가 은나라를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춘추시대 초 장왕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과 함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충신을 가리기 위해
3년 동안이나 짐짓 방탕한 생활을 하는 불비불명
(不飛不鳴)의 기간을 보낸 뒤 국정에 전념해
춘추오패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은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날을 기다려 와신상담
(臥薪嘗膽) 고사성어를 만들어냈다.
중국의 사마의와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심의
대가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모두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
끝에 중국 삼국시대와 일본 전국시대의 최종 승리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사람들이 삼국지에서 주목하는 인물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져 왔다.
한때는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량이 주목을 받았지만
조조에게로 관심이 옮겨 가더니 최근에는 사마의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사마의는 평생 조조와 그의 친족들에게 숱한 의심과
모함을 받으면서도 기다리고 버틸 줄 알았던
자기 통제의 승부사이다.
삼국지 인물들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만약 새가 울지
않으면, 조조는 새를 울게 만들고, 유비는 울어달라고
청하며, 사마의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들 인물들의 성격을 적절하게 비유한
표현이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를 보필하면서,
손자인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테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3대 주역이다.
이들 가운데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수모와 치욕을
참아낸 결과 '에도 시대'를 창건하고 태평성대를 이룬
인내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울지 않은 두견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사람의 대처법은 유명한 이야기다.
성질이 불같은 맹장 오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바로 죽여 버리고, 전략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달래어 울게 만들며, 덕장 스타일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본의 전국 통일은 오다 노부나가는 밭을 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씨를 뿌린 것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확했다고 할 수 있다.
蹞步而不休 跛鱉千里 (규보이불휴 파별천리)
온전치 못한 걸음이라도 쉬지 않고 걸으면
절뚝거리는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의미로,
춘추시대 순자가 했던 말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나아갈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은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섣부른 행동보다는 최적의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차분히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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