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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결혼, 음(陰)과 양(陽)이 만나다

물아일체 2018. 9. 14. 09:11

무더위가 물러나고 가을로 접어드니 지인들로부터

혼사가 있다는 소식이 부쩍 많이 들려온다.

결혼은 개인적으로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빅 이벤트이며, 사회적으로는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위대한 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인류가 멸종되지 않고 오늘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는 것은 결혼을 통해 삶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은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많은 변천이 있었다.

 

결혼(結婚)의 한자 혼()은 원래는 저녁 무렵을

의미하는 황혼의 혼()에서 유래된 글자이다.

전통 음양설에 따르면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

()이며,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라 양과 음이 교차하며

만나는 저녁에 남녀가 만나서 혼례를 올리는 것이

옛 풍습이었다.

 

고대로부터 서옥제, 민며느리제, 데릴사위제, 지참금 제도

결혼과 관련된 다양한 풍습이 있었는데, 대체로 열악한

경제와 부족한 노동력 해결을 위해 생겨났던 것들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초기의 전통혼례는 신랑이 장인 장모가 있는 신부의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른 처가에서 살다가 자식을 낳아

어느 정도 성장하면 본가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했다.

이를 남귀여가혼(男歸女家)이라 했는데, 고구려

생겨나 조선 중기까지 꾸준하게 이어졌다.

 

이러한 풍습으로 인해 결혼하는 것을 '장인(丈人)

장모(丈母) 집으로 간다' 의미의 '장가(丈家) 간다'

표현하기도 했다. 이율곡이 어린 시절 강릉 오죽헌

외할머니 집에서 신사임당과 함께 지낸 것도 이러한

풍습에 따른 것이다.

 

신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강릉 친정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다가 한양의 시댁으로 갔는데, 이 때 대관령을 넘으며

'유대관령 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시를 지어 강릉에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장가 가는' 풍습은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의 영향으로

사회가 점차 남자 중심으로 바뀜에 따라 신부가 시부모와

신랑의 집으로 '시집 가는' 결혼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신랑이 신부 집에서 신부를 맞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혼례를 치르는 의식을친영(親迎)이라 하는데,

왕실에서는 중종이 번째 계비 문정왕후를 맞을

친영의식을 치른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결혼이 많은 시기에는 축의금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 축의금은 우리나라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권세 있는 집안의 혼사에는 눈 도장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소시민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많은 축의금이 들어와 증여세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결혼 축의금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혼사에 품앗이

성격으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는 좋은 취지에서

생겨났지만 정도가 지나치게 되자

최근 김영란 법에서는 그 한도를 정하기도 했다.

 

결혼과 관련해 역사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정략결혼이다.

정략결혼은 특별한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는 결혼

일컫는 것으로, 나라 왕실이 결혼을 통해 국가 간의

이루기도 했다.

 

유명한 정략결혼으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프랑스 부르봉왕가 루이 16세의

혼을 있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두 나라

새롭게 부상하는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결혼생활은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고대 중국에서는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정책을 이용했다.

유세군은 한나라 무제의 딸로 위장하여 흉노족과

적대관계에 있던 투르크계 오손족 왕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녀를 지칭하는 '오손공주'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슬픈 운명의 여인'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한나라 원제 때는 중국 4 미녀 가운데 명인 궁녀

왕소군이 공주로 위장해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을

가게 일화가 유명하다.

왕소군의 슬픈 사연은 당나라 문인 동방규의 시에서

'봄은 왔지만 같지 않다' '춘래 불사춘

(春來不似春)'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공민왕과 원나라 노국대장공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일본 왕족 이방자

(일본명 나시모토 마사코) 여사의 경우처럼 적지 않은

정략결혼이 이뤄졌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며 평생에

뿐이라 성대하고 멋진 예식을 치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예전에 가난한 집에서는 '작수성례(酌水成禮)'라 하여

물 한 그릇만 떠놓고 간소하게 혼례를 치르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기피 현상이 심하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미루는 경우도 있고, 혼자 살면서

인생을 즐기겠다는 생각 때문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결혼기피 현상은 저출산으로 직결되고 이는 국가의 존속

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기에 적잖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겠다.

아름다운 인류 문화유산인 결혼을 통해 개인의 행복한 삶과

더불어 국가발전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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