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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65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비와 조식의 '칠보지재(七步之才)'

AD 220년 중국 삼국시대 조조가 죽자 큰 아들 조비가 그 뒤를 이어 위나라 황제로 즉위했다 조비는 어릴 때부터 자신 보다 글재주가 뛰어난 동생 조식을 시기해 온 데다, 후사 문제에서도 조식에게 밀릴 뻔했던 적이 있어서 조식을 미워했다. 그런데 조조가 죽었을 때 지방에 있던 아우 조식이 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비의 황제 즉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 이에 조비는 "조식의 불효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 조식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내리는 과제를 해결하면 용서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죄를 묻겠다고 했다. 조비가 조식에게 내린 과제는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형제'를 주제로 하는 시를 짓되, 그 내용에 '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서는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오기 장군의 '연저지인(吮疽之仁)'

오기(吳起)는 손자와 더불어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병법가이다. 에 버금가는 을 짓기도 한 오기는 위(魏)나라 출신으로, 76전 64승12무의 전적이 말해주듯 싸웠다 하면 승리를 거둬 상승장군 (常勝將軍)으로 불렸다. 오기는 젊은 시절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애썼지만 가산만 탕진했다. 그러다 자기를 비웃던 사람들 30여명을 죽이고 노나라로 달아났다. 얼마 후 노나라가 제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자 오기는 노나라의 장군이 될 기회를 잡았지만, 부인이 제나라 출신인 점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자 오기는 부인을 죽인 뒤 장군이 되었고,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사람들로부터 부인을 죽여서 장군 자리를 얻은 살처구장(殺妻求將)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나라와의 전쟁이 끝나자 노나라 왕은 오기의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협객 예양의 '칠신탄탄(漆身呑炭)'

의리와 집념의 상징적 인물인 예양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지백을 주군으로 섬겼다. 그러나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가문을 멸족시켰다. 이로써 진나라는 한, 위, 조 세 나라로 분열되어 그나마 존왕양이라는 명분이 살아 있던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끝없는 생존경쟁과 하극상이 만연한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으니 기원전 5세기 중반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조양자는 지백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많았다. 조양자는 지백을 죽이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고 술잔(일설에는 요강)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지백의 가신 중에 그의 총애를 받던 예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예양은 조양자의 행위에 분개하여 말했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범려와 한신의 '토사구팽(兎死狗烹)'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쓰다가 효용성이 없어지면 야박하게 내팽개치는 경우를 빗대어 말하는 고사성어이다. 토사구팽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보여준다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권 다툼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드라마틱한 복수극의 전개 과정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로 표현되고 있다. 오(吳)와 월(越), 두 나라의 50년 가까운 혈전은 마침내 월왕 구천이 승리하고, 오왕 부차가 자결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월나라가 승리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월왕 구천의 책사 범려였다. 그러나 범려는 나라의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자객 형가와 '방약무인(傍若無人)'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룬 진(秦)나라 왕 영정(시황제)을 암살하고자 했던 사람은 모두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은 형가와 그의 친구 고점리, 그리고 훗날 한 고조 유방의 책사가 되는 장량(자방)이다. 형가는 위나라 출신의 자객으로, 연나라에서 술주정뱅이처럼 저잣거리를 전전하다가 축(거문고와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을 타는 고점리와 친해졌다. 그들은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함께 노래하며 즐기다가 얼마 후 서로 붙잡고 울곤 했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史記) 자객열전' 형가편에서는 이 장면을 '방약무인(傍若無人)', 즉 형가와 고점리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방약무인' 고서성어가 유래했다. '방약무인'..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송나라 양공의 '송양지인(宋襄之仁)'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양공(襄公)이라는 군주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어느 날 송나라 땅에 운석이 비처럼 쏟아지자 자신이 패자가 될 좋은 징조라며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송양공은 당시의 패자였던 제환공이 죽어 혼란에 빠진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를 왕으로 옹립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일로 양공은 점점 교만해졌고, 패권에 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재상인 목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와 동맹을 맺은 정나라를 쳐들어갔다. 그러자 초나라는 동맹국인 정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파견하였다. 송양공은 초나라 군대를 홍수라고 하는 큰 강가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다. 송나라 군대가 먼저 홍수에 도착했고, 초나라 군대는 조금 늦게 도착해 이제 막 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를..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맹자와 양혜왕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기원전 3 - 4세기 중국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군주 앞에서도 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인물이었다.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양혜왕은 위나라의 세 번째 군주로, 이웃의 강국인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도읍을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일부 문서에서는 위나라를 양(梁)나라로 표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양혜왕은 위혜왕과 같은 인물이다. 맹자의 사상이 담긴 책 '맹자'는 의(義)를 중시하고 대장부처럼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뤄 읽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두 사람간의 대화는 맹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양혜왕이 위나라를 방문한 맹자를 만나 물었다. "叟, 不遠千里而來. 何以利吾國乎"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지교(知音之交)'

나의 소리를 듣고 나를 알아주는 친구, 즉 마음까지 통하는 친구를 뜻하는 '지음지교(知音之交)'는 깊은 우정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고사성어로, '백아절현 (伯牙絶絃)'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인 백아는 원래 초나라 출신으로 거문고 연주의 명인이었다. 어느 날 백아는 고국인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모처럼 자신의 고향에 들러 소나무 밑에서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근처에서 쉬고 있던 나무꾼인 종자기가 거문고 소리를 듣게 된다. 종자기는 백아가 높은 산을 떠올리며 거문고를 연주하자 "그 소리가 마치 높은 산과 같구나.(高山)"라며 칭찬했다. 이번에는 백아가 강물을 떠 올리며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그 소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구나.(流水)"라며 칭찬을 했다. 이처럼 종..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순우곤의 '주극생란(酒極生亂)'과 '견토지쟁(犬兎之爭)'

순우곤은 BC 4세기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 때의 관료이자 학자이다. 그는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는데 능숙해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 골계열전'에는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어느 날 술을 몹시 좋아하는 제나라 왕이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순우곤이 대답했다. “한 잔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왕께서 술을 내리시면 관원들이 옆에 있어 두렵고 엎드려 마셔야 하니 한 잔만 마셔도 취합니다. 친척 어르신께서 주시는 술을 받아먹다 보면 한 병에 취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대여섯 말에 취합니다. 하지만 깊은 밤에 자리를 좁혀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와 '차도살인(借刀殺人)'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고사성어인 '차도살인 (借刀殺人)'은 병법서인 '36계'에 제 3계로 수록된 대표적인 계책이기도 하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로, 처리하고 싶은 상대를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려 끝장내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일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을 해치운다면 후환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남을 충동질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적을 제거하게 만든다면 목표를 달성함과 아울러 책임질 일도 없기에 차도살인 계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차도살인으로 국면을 전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 왕윤,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