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집념의 상징적 인물인 예양은 춘추시대
진(晉)나라 지백을 주군으로 섬겼다.
그러나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가문을 멸족시켰다.
이로써 진나라는 한, 위, 조 세 나라로 분열되어
그나마 존왕양이라는 명분이 살아 있던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끝없는 생존경쟁과 하극상이 만연한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으니 기원전 5세기 중반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조양자는 지백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많았다.
조양자는 지백을 죽이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고 술잔(일설에는 요강)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지백의 가신 중에 그의 총애를 받던 예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예양은 조양자의 행위에 분개하여 말했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
지백은 나를 알아준 사람이다.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 죽겠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조양자의 수하로 들어가
변소의 내부를 칠하는 일을 하면서 조양자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양자가 용변을 보기 위해 변소에
가다가 갑자기 살기를 느껴 주변을 수색해 비수를 품고
있던 예양을 붙잡았다.
심문 결과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다는 예양의
자백을 들었으나, 조양자는 그의 의기를 가상히 여겨
용서하고 풀어주었다.
그러나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먹어 목소리까지 바꿔 남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신을 한 뒤, 거지 노릇을 하면서
조양자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다시 엿보게 되었다.
어느 날 예양의 친구가 그에게 “먼저 조양자의
부하가 되어 그의 신뢰를 얻은 다음에, 그에게 접근해
목을 베면 수월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이처럼 몸을
망가뜨리며 힘들게 원수를 갚으려 하는가?" 물었다.
이에 예양은 “이미 남을 섬기는 처지가 된 후에 그를
죽이려 한다면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는 일일세.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된 사람이 두 마음을 품은 채
주인을 섬기는 일을 경계하려는 것이네.”라고 말했다.
얼마 뒤 조양자가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외출해 다리를
건너려 할 때 말이 갑자기 놀랐다.
조양자가 사람들을 시켜 수색을 해보니 예양이 조양자를
암살하기 위해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조양자는 예양을 붙잡아 꾸짖으며 물었다.
“그대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다가 지백에게 몸을
맡기고, 지백이 그들을 멸망시킬 때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나에게는 원수를 갚겠다고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예양은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지만,
두 사람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했으므로 나도
그에 맞게 처신했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한 나라의 선비로 예우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대부님 몸에 복수를 하는 일은 이미 틀렸고,
염치없지만 그 옷이라도 칼로 쳐서 복수에 갈음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라고 청했다.
조양자가 그의 의로운 기상에 감동을 받아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니, 예양은 그 옷을 칼로
세 번 내리치고는 “이제야 지하에 잠든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하고는 그 칼로 자신을
찔러 자살하였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유협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양이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온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먹어 벙어리가 될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바꾼 데서 유래한 ‘칠신탄탄(漆身呑炭)’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해내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예양의 말과 행동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목숨을 건 진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신의와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눈앞의 작은 이익만 좇아가는 사람들은
마음에 새길 만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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