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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범려와 한신의 '토사구팽(兎死狗烹)'

물아일체 2023. 2. 27. 05:00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쓰다가 효용성이 없어지면 야박하게 내팽개치는 

경우를 빗대어 말하는 고사성어이다.

 

토사구팽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보여준다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 범려의 토사구팽 >

 

 

중국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권 다툼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드라마틱한 복수극의 전개 과정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로 표현되고 있다.

 

오()와 월(), 두 나라의 50년 가까운 혈전은

마침내 월왕 구천이 승리하고, 오왕 부차가 자결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월나라가 승리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월왕 구천의 책사 범려였다.

그러나 범려는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는 구천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관직에서 물러나 월나라를 떠난다.

 

범려는 떠나기에 앞서 함께 고생했던 동료 문종에게 

兎死走狗烹 (교토사 주구팽)
高鳥盡良弓藏 (고조진 양궁장)

敵國破謀臣亡 (적국파 모신망)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고

새를 잡은 뒤에는 활을 곳간에 처박으며

적국이 멸망하면 지혜로운 신하를 제거한다."며

토사구팽의 위험을 알리고 빨리 월왕 구천의 곁을

떠날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범려는 토사구팽의 이치를 터득한 정치고수의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문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구천으로부터 반역죄를 의심 받아

자결하게 된다.

 

한편,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간 범려는 농업과

상업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거부가 되어 천수를

누렸으며, 오늘날까지 재물의 신(財神)이자, 상업의

신(商神)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 되었다.

 

                     < 한신의 토사구팽 >

 

 

군대를 운용하는 용병의 신선으로 불리는 한신은

책략가인 장량, 군수와 행정을 담당했던 소하와 함께

한나라 개국공신인 '서한 3걸'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초나라 출신으로 원래는 항우 밑에 있었으나,

그 곳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자

한나라 유방의 진영으로 옮겨갔다.

 

소하의 추천으로 한나라 대장군이 된 한신은 탁월한

능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다.

특히, 초한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해하싸움에서 초패왕

항우를 물리침으로써 유방이 진나라를 잇는 통일제국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초한전쟁이 끝나자 유방은 황제로 즉위한 후 공신들을

각지의 제후로 책봉했다. 

그러나 유방은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한신을 경계했다.

 

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임명되었다가 반란죄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한신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이제 내가 잡혀 죽게

되는구나!” 라며 토사구팽 당하는 울분을 토로했다.

 

결국 한신은 다시 회음후로 강등된 후 유방의 부인

여태후와 소하의 모략에 빠져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신의 능력도 난세에는 적을 무찌르는 대장군으로 

필요했지만, 치세에는 그저 왕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밖에 인식되지 않아 토사구팽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신과 달리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책사 장량(자방)은

초한전쟁이 끝나자 유방의 곁을 떠나 장가계로 은신해

천수를 누렸다.

 

 

토사구팽의 예는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난세와 치세, 창업과 수성에는 필요한 

인재의 스펙이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토사구팽을 결코 부정적으로 볼 것만도 아니다.

 

功成身退 天之道 (공성신퇴 천지도)

공을 이뤘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2천여 년 전 노자와 범려, 그리고 장량의 말과

처신에서 토사구팽을 면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