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룬 진(秦)나라 왕 영정(시황제)을
암살하고자 했던 사람은 모두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은 형가와 그의 친구 고점리, 그리고 훗날
한 고조 유방의 책사가 되는 장량(자방)이다.
형가는 위나라 출신의 자객으로, 연나라에서
술주정뱅이처럼 저잣거리를 전전하다가
축(거문고와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을 타는
고점리와 친해졌다.
그들은 고점리가 축을 타면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함께 노래하며 즐기다가 얼마 후
서로 붙잡고 울곤 했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史記) 자객열전'
형가편에서는 이 장면을 '방약무인(傍若無人)',
즉 형가와 고점리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방약무인' 고서성어가 유래했다.
'방약무인'은 초기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제 세상인 양
함부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했다.
진왕 영정이 전국을 통일하기 얼마 전, 연나라의
태자 단은 머지않아 진나라가 공격해 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를 물리칠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태자 단은 진왕 영정을 암살하기로 하고,
이 문제를 전광이라는 측근과 상의했는데
전광은 자객으로 보낼 인물로 형가를 추천했다.
형가는 진왕에게 의심받지 않고 접근하기 위해서는
연나라의 곡창지대인 독항 지방의 지도와 연나라로
망명해 온 진나라 장수 번어기의 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태자 단은 독항 지방 지도는 줄 수 있지만,
망명해온 번어기를 죽일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형가는 직접 번어기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그의 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번어기는 진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을 바치겠다며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형가는 번어기의 목과 함께 진왕 암살에 쓸 예리한
비수를 구해 독항 지도 안에 감추고 진나라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형가가 떠나는 날 태자 단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소복을 입고 역수 부근까지 전송하러 나왔다.
모두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형가의 친구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그의 심정을 담은 노래 '역수가'를
불렀다.
風蕭蕭兮 易水寒 (풍소소혜 역수한)
壯士一去兮 不復還 (장사일거혜 불부환)
"바람 쓸쓸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처절한 축 연주와
형가의 노래 소리에 머리카락이 하늘로 곤두섰다고
한다. 형가는 배를 타고 떠나며 끝내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진의 수도 함양에 당도한 형가가 영토 할양의 증표인
연나라 독항 지도와 번어기의 목을 바치겠다고 하자
진왕 영정은 크게 기뻐하며 형가를 맞이했다.
진왕에게 접근한 형가가 두루마리로 된 지도를 풀자
미리 감추어둔 비수가 나왔고, 형가는 그 비수로
진왕을 찌르려 했으나 진왕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형가는 비수를 들고 진왕을 쫓았고, 진왕은 필사적으로
형가의 비수를 피했다.
진왕은 다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려 했으나
검이 너무 길어 칼집에서 빠지지 않았다.
진의 법률에는 신하가 어전에 무기를 갖고 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병사들도 함부로 왕의 곁에 올 수
없었기에 그 누구도 나서서 진왕을 도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때 전의인 하우저가 갖고 있던 약봉지를 형가에게
집어 던졌고, 형가가 놀란 틈을 타 진왕은 간신히
검을 빼어 형가에게 휘둘렀다.
형가가 가진 짧은 비수는 진왕의 장검에 맞설 수
없었고, 결국 형가는 진왕의 칼에 처형되었다.
한편, 형가의 친구 고점리는 형가의 암살 실패 후
이름을 바꾸고 시골로 숨어들었으나 얼마 후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 병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진시황제는 고점리의 축 타는 재주를 아껴 처형을
면하게 하는 대신 그의 눈을 멀게 하고 궁중에서
축을 연주하게 했다.
이에 고점리는 자신의 악기인 축 속에 납덩이를 넣어
묵직하게 만든 뒤 시황제을 암살할 기회를 엿보았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날, 고점리는 시황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납이 든 축을
집어 던졌지만, 축은 목표에서 빗나가 시황제 암살에
실패했고, 고점리는 현장에서 처형되었다.
이러한 형가와 고점리의 시황제 암살 미수 사건은
후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칭송되었으며,
시와 소설, 연극, 영화 등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고, 이연걸과 양조위,
장만옥 등이 출연한 <영웅>은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형가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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