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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맹자와 양혜왕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물아일체 2023. 1. 19. 05:30

기원전 3 - 4세기 중국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군주 앞에서도 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인물이었다.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양혜왕은 위나라의 세 번째

군주로, 이웃의 강국인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도읍을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일부 문서에서는 위나라를 양()나라로

표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양혜왕은 위혜왕과 같은 인물이다.

 

 

맹자의 사상이 담긴 책 '맹자'는 의()를 중시하고

대장부처럼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뤄

읽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두 사람간의 대화는

맹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양혜왕이 위나라를 방문한 맹자를 만나 물었다.

"不遠千里而來. 何以利吾國乎"

(수, 불원천리이래 하이리오국호)

"선생께서 불원천리 멀다 않고 오셨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시겠습니까?"

 

맹자는 주저 없이 왕에게 일침을 가했다.

"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왕, 하필왈리. 역유인의이이의),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만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직설적인 말로 왕을 무안하게 만드는 맹자의 모습은

'조금 못하고 나은 차이는 있으나, 잘못되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대화에서도 볼 수 있다.

 

양해왕이 다시 물었다.

“과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에 흉년이 들면 하동(河東)의 곡식을

옮겨다 줍니다. 

그리고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이웃나라를 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이가 없는데도

그 백성이 줄지 않고, 우리나라의 백성은 늘지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투가 한창일 때 두 병사가 도망을 갔습니다.

한 병사는 백 보를 도망갔고, 또 한 병사는 오십 보를

도망갔습니다.

오십 보를 도망간 병사가 백 보를 도망간 병사를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었다면 어떻습니까?"

 

 

이에 양혜왕이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오?”라고 대답하자 맹자는 여지없이

일침을 가한다.

“왕께서 그것을 아신다면 인접 국가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결국 인접국의 정치나 양혜왕의 정치나 맹자가 중시하는

인의(仁義)와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는 '오십보백보'라고 질책한 것이다.

 

할아버지인 위문후의 개혁정책으로 전국시대 초기

부국강병의 기반을 마련했던 위나라는 무능한 양혜왕

때에 이르러 나라의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양혜왕에게도 부국강병을 이룰 기회는 있었다.

당시 위나라에는 병법의 대가인 손빈, 싸웠다 하면

이기는 상승장군 오기, 법가 사상가인 상앙 등

출중한 역량을 지닌 인재들이 있었다.

 

그러나 양혜왕은 이들 인재의 가치를 몰라봤고,

결국 손빈은 제나라로, 오기는 초나라로, 상앙은

진나라로 탈출해 각자 그 나라의 부강을 위해

큰 공을 세우게 된다.

 

건국 후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여야가 바뀐 것을 제외하면 정치가 나아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 앞에 내로남불하고,

이전투구하는 정치인들의 꼴사나운 모습에서

'오십보백보' 고사성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오래 전 일이지만, 어느 재벌기업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을

했다가 한 동안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그 후 그 기업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변모했지만, 당시 그 기업인을 향해

호통을 치던 정치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오십보백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