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곤은 BC 4세기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 때의
관료이자 학자이다.
그는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는데 능숙해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 골계열전'에는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 주극생란(酒極生亂) >
어느 날 술을 몹시 좋아하는 제나라 왕이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순우곤이 대답했다.
“한 잔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왕께서 술을 내리시면 관원들이 옆에 있어 두렵고
엎드려 마셔야 하니 한 잔만 마셔도 취합니다.
친척 어르신께서 주시는 술을 받아먹다 보면
한 병에 취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대여섯 말에 취합니다.
하지만 깊은 밤에 자리를 좁혀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진 뒤, 엷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 은은한 향기에 한 섬의 술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극생란 낙극생비(酒極生亂 樂極生悲)'
술이 극에 달하면 난리가 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집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도가 지나치면 안 되며,
도가 지나치면 쇠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우곤이 넌지시 던진 충고의 말에 왕은 밤을 새우며
술 마시는 버릇을 버렸고, 술자리가 있을 때는 순우곤을
옆에 두고 조언하게 했다.
순우곤이 말한 '주극생란 낙극생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교훈적인 문장으로 전해오고
있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이다.
술이 극에 달하면 난리가 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
품위 있게 마시고 절제하는 음주문화가 정착되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 견토지쟁(犬兎之爭) >
제나라 왕이 군대를 일으켜 위나라를 치려 하자,
순우곤이 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천하의 날랜 사냥개와 천하의 발 빠른 토끼가
있었습니다.
개가 토끼를 뒤쫓자 그들은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돌고
가파른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쫓는 개도, 쫓기는 토끼도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농부가 힘들이지 않고
횡재를 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느라 병사들은
지쳐 있고 백성들도 피폐해 있습니다.
이를 기회로 진(秦)나라나 초(楚)나라가 농부처럼 이득을
거두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왕은 순우곤의 말에 군사 일으키는 것을 그만두고
부국강병에 힘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견토지쟁'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되었는데,
이는 개와 토끼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나 단체가 싸우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득을
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부지리(漁夫之利)’와 비슷한 의미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노사 대립과 여야 갈등이
행여 주변국들이나 글로벌 경쟁기업들만 이득을
보게 하는 '견토지쟁'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죽기살기로 다투기보다 당장은 조금 손해를 볼지언정
양보로써 화합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남녀수수불친(男女授受不親) >
하루는 순우곤이 제나라를 방문한 맹자를 만나 물었다.
“남녀가 함부로 손을 잡지 않는 것(男女授受不親 남녀
수수불친)이 예(禮)인가요?”
맹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순우곤이 다시 물었다.
“만약 형수가 물에 빠졌다면 손을 건네야 합니까,
아니면 건네지 말아야 합니까?”
맹자가 다시 대답했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안 건진다면 그건 짐승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남녀가 손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이지만, 위험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것은
도리입니다.”
그러자 순우곤이 맹자에게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맹자 선생께서는 지금 천하가 물에 빠졌는데
왜 안 건져내는 겁니까?”
이에 맹자도 지지 않고 회심의 답변을 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손을 뻗어 건져내야 하지만,
천하가 물에 빠진다면 어찌 손으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천하는 도(道)로써 건져내야 합니다.”
대사상가인 맹자를 제나라에 영입하고 싶어하는
순우곤과, 제나라에서 일할 뜻이 없는 맹자,
두 사람의 대화가 참으로 현문현답(賢問賢答)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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