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고사성어인 '차도살인
(借刀殺人)'은 병법서인 '36계'에 제 3계로 수록된
대표적인 계책이기도 하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로,
처리하고 싶은 상대를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려 끝장내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일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을 해치운다면 후환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남을 충동질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적을
제거하게 만든다면 목표를 달성함과 아울러 책임질 일도
없기에 차도살인 계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차도살인으로
국면을 전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 왕윤,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죽이다 >
후한 말 조정의 원로인 사도 왕윤이 자타가 인정하는
삼국지 최고의 싸움꾼인 여포의 창날을 빌려 동탁을
제거한 것은 차도살인의 대표적 사례이다.
왕윤은 자신의 수양딸인 미녀 초선을 이용해 폭정을
일삼고 있는 동탁과 그의 양아들로 동탁의 호위무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여포를 이간시켜 동탁을 제거할
계략을 꾸몄다.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과의 결혼을 부추기는 한편,
동탁을 초대해 초선을 만나게 했다.
동탁은 한눈에 반한 초선을 자기에게 줄 것을 왕윤에게
요구했다.
초선을 동탁에게 보낸 왕윤은 여포에게는 동탁이
초선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고 거짓말을 해 여포로
하여금 동탁에게 앙심을 품게 만들었다.
초선 또한 여포에게 자기를 동탁으로부터 구출해 달라고
애원하자 결국 여포는 동탁을 주살하게 되고, 왕윤의
차도살인 계책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 유비, 조조를 이용해 여포를 죽이다 >
동탁을 죽인 여포는 여러 세력들에게 의탁을 하지만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이 찍힌 여포를 결코 누구도
중용하지 않았다.
유비가 갈 곳 없는 여포를 받아주었으나, 배신에 능한
여포는 유비의 근거지였던 서주성을 빼앗고 자신이
성주가 되었다.
그 후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여포를 공격했는데,
여포는 잠든 사이에 부하들에 의해 포박당해 조조의
포로가 되었다.
여포가 조조에게 자신을 풀어주면 천하통일의 과업을
돕겠다고 하자 조조는 망설이다가 옆에 있던 유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이에 유비가 “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라고 말하자
조조는 바로 부하들에게 여포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유비는 자신의 서주성을 빼앗은 배은망덕한 여포를
조조의 손을 빌려 제거해 버린 것이다.
< 주유, 장간을 이용해 채모와 장윤을 죽이다 >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가 조조 휘하의 장수 채모와
장윤을 제거한 일화도 차도살인의 좋은 사례이다.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동오정벌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던 주유에게
옛 친구 장간이 찾아왔다.
장간은 주유의 항복을 설득하라는 조조의 밀명을
받고 온 것인데, 주유는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유는 장간을 반갑게 맞이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술에 취한 척하며 장간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으니 오늘 밤 나와 같이
자도록 하세.”
그러고는 장간을 이끌고 자기 막사로 갔고, 이내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장간은 주유의 군막 안을
살펴보다가 탁자 위에 쌓여 있는 문서를 보았다.
장간이 그것들을 몰래 살펴보니 그 가운데 편지가
한 통 있었다.
조조의 수군 조련을 담당하고 있는 채모와 장윤이
보내온 편지였는데,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항복했으나 조만간 조조의 머리를 잘라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장간은 편지를 은밀히 품 안에 감춘 뒤 이튿날 몰래
배를 타고 조조 진영으로 돌아갔다.
장간은 조조에게 “주유의 항복을 설득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기밀 문서를 가져왔다.”며 주유의 진영에서
훔쳐온 편지를 내놓았다.
편지를 읽은 조조는 즉시 채모와 장윤을 끌어내
참수하도록 명령했다.
잠시 후 조조는 이것이 주유가 꾸민 차도살인 계책임을
깨닫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 조조, 손권을 이용해 관우를 죽이다 >
서기 219년, 촉의 관우가 위나라의 번성을 공격했다.
방덕과 우금이 이끄는 위나라 지원군이 관우에게
격퇴되고, 조조는 궁지에 빠졌다.
이에 조조는 관우가 다스리는 형주 땅을 분할하는
조건으로 오나라 손권에게 동맹을 제안했다.
조조의 동맹 요청을 받아들인 오나라 손권은
관우의 본거지인 강릉을 공격했고, 여몽 장군이
사로잡은 관우를 처형한 뒤 그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번성에서 철수하는 관우를 자신이 사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유비와의 후환을 피하고자 그 역할을
손권에게 넘기는 차도살인 계책을 쓴 것이다.
조조의 예상대로 유비는 관우를 죽인 손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정벌에 나서니
관도대전, 적벽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으로
불리는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지교(知音之交)' (0) | 2022.12.19 |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순우곤의 '주극생란(酒極生亂)'과 '견토지쟁(犬兎之爭)' (2) | 2022.12.02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조와 '망매해갈(望梅解渴)' (0) | 2022.10.11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자룡과 '간뇌도지(肝腦塗地)' (0) | 2022.10.07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마량, 마속 형제 관련 고사성어 (0) | 2022.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