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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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10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조의 '조조삼소(曹操三笑)'

AD 3 세기 초 후한 말 삼국시대,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출전한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뒤, 겨우 군사 1천여 명과 함께 이릉으로 향했을 때의 일이다. 급하게 퇴각을 하던 조조가 이곳이 어디냐고 묻자 측근 장수가 대답했다. "오림 서쪽, 의도 북쪽입니다." 조조가 지세를 살펴보니 험준하고 숲이 울창했다. 이때 조조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군들이 웃는 이유를 묻자 조조가 말했다. "주유는 책모가 없고, 제갈량은 지혜가 부족함을 비웃었네. 나라면 이곳에 군사를 매복해 두었을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네" 그런데 조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쪽에서 복병이 쏟아져 나왔고, 적장 조자룡이 크게 외쳤다. "군사 제갈량의 영을 받들어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됐노라!" 갑작스런..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이곡과 관우의 '낭중취물(囊中取物)'

'낭중취물(囊中取物)'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 오는 것처럼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 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쉽다', 또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우리말과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낭중취물'은 중국의 5대 10국 시대 때 산동성 지역에 사는 절친한 친국 사이인 한희재와 이곡이라는 사람의 대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5대 10국 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후 송나라가 건국 될 때까지의 혼란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후당 명종때, 한희재가 강남의 오나라로 떠나게 되자, 이곡은 그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하고 송별을 아쉬워했다. 술을 마시면서,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희재가..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조의 '자가당착(自家撞着)'

서기 198년, 후한 말 건안 3년 때의 일이다, 동탁의 잔당 장수(張繡)가 한나라의 도읍이었던 허도 남쪽 남양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인 헌제는 승상인 조조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토벌하겠다고 하자 성밖까지 나가서 조조의 군사를 환송했다. 때는 초여름이었다.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보리가 잘 익은 들판을 지나는데,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조조가 곁에 있던 책사 곽가에게 물었다. "어째서 농부들이 보리수확을 하지 않는가?" "예, 농부들은 군사작전이 펼쳐지면 군대의 행패가 무서워 모두 달아나버립니다. 그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그 지역 노인들에게 사람을 보내 불러 모은 후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나는 황제의 명으로 반..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비와 조식의 '칠보지재(七步之才)'

AD 220년 중국 삼국시대 조조가 죽자 큰 아들 조비가 그 뒤를 이어 위나라 황제로 즉위했다 조비는 어릴 때부터 자신 보다 글재주가 뛰어난 동생 조식을 시기해 온 데다, 후사 문제에서도 조식에게 밀릴 뻔했던 적이 있어서 조식을 미워했다. 그런데 조조가 죽었을 때 지방에 있던 아우 조식이 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비의 황제 즉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 이에 조비는 "조식의 불효를 용서할 수 없다."면서 조식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내리는 과제를 해결하면 용서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죄를 묻겠다고 했다. 조비가 조식에게 내린 과제는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형제'를 주제로 하는 시를 짓되, 그 내용에 '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서는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송나라 양공의 '송양지인(宋襄之仁)'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양공(襄公)이라는 군주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어느 날 송나라 땅에 운석이 비처럼 쏟아지자 자신이 패자가 될 좋은 징조라며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송양공은 당시의 패자였던 제환공이 죽어 혼란에 빠진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를 왕으로 옹립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일로 양공은 점점 교만해졌고, 패권에 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재상인 목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와 동맹을 맺은 정나라를 쳐들어갔다. 그러자 초나라는 동맹국인 정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파견하였다. 송양공은 초나라 군대를 홍수라고 하는 큰 강가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다. 송나라 군대가 먼저 홍수에 도착했고, 초나라 군대는 조금 늦게 도착해 이제 막 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를..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와 '차도살인(借刀殺人)'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고사성어인 '차도살인 (借刀殺人)'은 병법서인 '36계'에 제 3계로 수록된 대표적인 계책이기도 하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로, 처리하고 싶은 상대를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려 끝장내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일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을 해치운다면 후환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남을 충동질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적을 제거하게 만든다면 목표를 달성함과 아울러 책임질 일도 없기에 차도살인 계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차도살인으로 국면을 전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 왕윤,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죽이..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조와 '망매해갈(望梅解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조가 헌제를 왕으로 옹립하고 허도에 도읍을 정한 후 남쪽 원정에 나섰다. 남쪽에서 원술과 손책 같은 군웅들이 끊임없이 허도를 노리고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매우 더운 초여름이었다. 병사들은 오랜 행군에 지친데다 식수 부족으로 모두 심하게 갈증을 느껴 행군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조조가 소리쳤다. "저 너머에 커다란 매실나무 숲이 있다. 새콤한 열매가 잔뜩 열려 있을 테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장병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실을 생각하자 입안에 절로 침이 고여 다시 기운을 내서 행군을 할 수 있었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망매해갈(望梅解渴)'은 조조의 뛰어난 재치와 임기응변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람을 속인 예로써 지적되기도 한다. '망매해갈..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너무 총명해서 화를 당한 양수와 계륵(鷄肋)

'계륵(鷄肋)'은 '닭의 갈비'라는 의미인데,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부위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취하자니 별 이득은 없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비록 작은 이득이지만 아까워 망설이게 되는 경우, 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계륵'이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하게 한 사람은 중국 삼국시대의 위왕 조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계륵'을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게 만든 이는 조조의 책사인 양수라고 하겠다. '후한서 양수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후한 말 위, 촉, 오 삼국의 형세가 굳어져 가고 있을 무렵, 위왕 조조는 촉의 유비와 한중이라는 지역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일진일퇴 공방을 벌이던 전투는 어느 순간 조조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밀고 들어가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