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 세기 초 후한 말 삼국시대,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출전한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뒤,
겨우 군사 1천여 명과 함께 이릉으로 향했을 때의
일이다.
급하게 퇴각을 하던 조조가 이곳이 어디냐고 묻자
측근 장수가 대답했다.
"오림 서쪽, 의도 북쪽입니다."
조조가 지세를 살펴보니 험준하고 숲이 울창했다.
이때 조조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군들이 웃는 이유를 묻자 조조가 말했다.
"주유는 책모가 없고, 제갈량은 지혜가 부족함을
비웃었네. 나라면 이곳에 군사를 매복해 두었을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네"
그런데 조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쪽에서 복병이
쏟아져 나왔고, 적장 조자룡이 크게 외쳤다.
"군사 제갈량의 영을 받들어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됐노라!"
갑작스런 복병 출현에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질 뻔한
조조는 급히 말을 달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
조조는 호로구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잠깐 쉬더니
이내 또다시 크게 웃었다.
측근이 그 이유를 물었다.
"승상께서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다가 조자룡이 나타나
인마를 잃었는데, 지금은 또 왜 웃으십니까?"
그러자 조조는 여전히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주유와 제갈량의 지모가 부족하다 생각되어
웃었노라. 나라면 이곳에 복병을 대기시켜 놓았을
것이다. 피로에 지친 적을 공격하면 중상을 면치
못할 테니 말이다, 하하하!"
그 순간, 앞뒤에서 적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이번에는 장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역적 조조야, 어디로 달아나느냐?"
놀란 조조는 갑옷을 버리고 급히 말 위에 올라
있는 힘을 다해 달려 구사일생으로 화용도에 이르렀다.
조조가 다시 말 위에서 채찍을 높이 들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무능하도다. 이런 곳에 약간의 군사만
매복시켰더라도 우리는 속수무책이 됐을 테니 말이다.
하하하!"
그때였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양쪽에서 군사 수백 명이 나타났다.
관우가 청룡도를 들고 적토마를 탄 채 조조의 앞길을
막았다.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확인한 조조는 관우에게 지난날
자신이 돌봐줬던 옛정과 의리를 거론하며 살려줄 것을
애원했다.
마음이 약해진 관우는 갈등 끝에 조조를 반드시
처단하겠다는 제갈량과의 약속을 져버리고 조조에게
길을 내줬고, 조조는 그 덕분에 간신히 도망을 쳤다.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 장면은 조조가
오판과 실언을 거듭하면서도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오만한 자임을 보여준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고사성어 '조조삼소(曹操三笑)'는
'조조가 세 번 웃었다'는 뜻으로,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만하여 남을 비웃거나, 눈앞에 닥쳐올 재앙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뇌물수수, 횡령, 배임, 직권남용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일부 정치인들과 범죄 피의자들이 검찰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입에 미소를 머금고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이 이따금 TV 화면에 비춰지곤 한다.
그들의 웃음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은 물론,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비웃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간 불쾌하지 않다.
'조조삼소' 일화에서 조조가 관우에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했듯, 부정한 정치인들과 범죄 피의자들은
결국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후회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天網恢恢 疏而不失 (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서 성긴 듯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옛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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