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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이곡과 관우의 '낭중취물(囊中取物)'

물아일체 2024. 2. 22. 00:00

'낭중취물(囊中取物)' '주머니 속의 물건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 오는 것처럼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 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쉽다', 또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우리말과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낭중취물'은 중국의 5대 10국 시대 때 산동성 지역에

사는 절친한 친국 사이인 한희재와 이곡이라는 사람의

대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5대 10국 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후 송나라가 건국

될 때까지의 혼란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후당 명종때, 한희재가 강남의 오나라로 떠나게 되자,

이곡은 그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하고 송별을 아쉬워했다.

 

술을 마시면서,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희재가 먼저 말했다.

"만약 강남에서 나를 재상으로 써준다면, 나는 거침없이

쳐들어가 중원을 일거에 빼앗겠소."

 

그러자 이곡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만약 중원에서 나를 재상으로 삼는다면, 내가 강남을

차지하는 것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을 것이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웃었다.

 

'낭중취물' 표현은 14세기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서도 여러 차례 보인다.

관우가 조조의 포로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원소와 대결하고 있었는데,

이때 관우도 조조를 도와 전투에 참가했다.      

 

 

원소와의 백마전투에서 조조군은 원소군의 장수 안량과

문추의 위세에 눌려 고전하고 있었다.

이때 관우가 출전을 자청하자 조조는 워낙 사정이 급해서

하는 수 없이 허락했다.

그러자 관우는 단숨에 안량의 목을 베고 이어서 문추의

목까지 베어 버리니, 조조를 비롯한 수하 장수들이 모두

그의 무용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자 관우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겸손해하면서 

"제 동생 장비는 백만 대군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기를

자기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조조는 관우의 말에 크게 놀라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에 장비를 만나거든 가볍게 대적하지 마라.”

그리고 잊지 않도록 그 이름을 전포 깃에 적어 두라고

명했다       

 

 

이 때문에 훗날 조조가 유방와 다시 전투를 벌일 때, 

장판파에서 장비가 혼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본

조조의 군대는 관우가 했던 이 말을 상기하면서

두려워했고, 누구 하나 장비에게 다가가지 못하다가

장수인 하후걸이 나섰지만 장비의 호통에 낙마하자

더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물론, 이 내용은 정사 삼국지에는 없는 내용이다.

 

'낭중취물' 표현은 삼국지연의 후반에서 또 한 번

등장한다.

맹획을 처음 사로잡은 제갈량이 맹획을 풀어주자,

부하 장수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제갈량은 "내가 맹획을 사로잡는 건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과도 같으니, 맹획의 마음을 복종시켜

자연스럽게 평정하려 함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맹획을 다시 잡았다가 풀어주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하다가 결국 맹획의 항복을 받아내 '칠종칠금'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거의

바닥수준이다.

아직도 일부 공직자들이 자기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

쓰듯 국민들의 세금을 사적 이익을 위해 수시로 손쉽게

훔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 기관이나 자치단체의

법인카드와 특활비 유용 문제는 비근한 예라고 하겠다.

 

"나라 살림을 해야 할 관리들이 제 살림하기에 급급하면

그 나라는 도둑을 가슴에 품고 있는 꼴이 되고, 

관리들이 부자로 살려고 하면 강도를 모시고 사는 꼴이

된다"고 했던 공자의 말을 공무원들은 물론 국민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