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묘비명 21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마틴 루터 킹 목사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마침내 자유, 마침내 자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자유롭습니다." 마틴 루터 킹(1929 - 1968년)은 침례교 목사이자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아이콘이다. 고향인 조지아 주 애틀란타 시에 있는 킹 목사의 무덤은 부인과 함께 안장된 합장 석관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킹 목사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유복하고 교육받은 집안에서 자랐으며, 보스턴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킹 목사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칼 마르크스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오직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영국 런던 외곽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칼 마르크스(1818 - 1883년)의 묘비문으로, 그의 사상을 담고 있다. 묘비문의 앞 문장은 그가 남긴 잡기장에서 따왔으며, 뒷문장은 친구이자 동료인 엥겔스와 함께 쓴 의 마지막 문장이다. 1999년 영국의 BBC에서는 "지난 1000년간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思無邪(사무사)를 人生(인생)의 道理(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무항산이무항심)을 治國(치국)의 根本(근본)으로 삼아 國利民福(국리민복)과 國泰民安(국태민안)을 具現(구현)하기 위하여 獻身盡力(헌신진력)하였거늘, 晩年(만년)에 이르러 年九十而知八十九非(연구십이지팔십구비)라고 嘆(탄)하며 數多(수다)한 물음에는 笑而不答(소이부답) 하던 者(자), 內助(내조)의 德(덕)을 베풀어준 永世伴侶 (영세반려)와..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공동묘지에 있는 스탕달의 묘와 묘비) "밀라노 사람 앙리 벨.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스탕달의 묘비문이다. 작가였던 그의 인생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자신의 후회 없는 삶을 표현한 아름다운 묘비문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 남긴 문장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자칭 '걸레' 중광 스님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괜히 왔다 간다." ‘걸레’,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삶을 파격으로 일관했던 화가, 예술가 중광 스님의 묘비문이다. 권력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인생이든, 가난에 찌들었던 인생이든 모두 덧없는 것임을 명쾌하게 표현한 글귀라고 하겠다. 1935년생으로 중졸 학력의 중광 스님은 26세에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했으며, 조계종 종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등 잇따른 기행으로 1979년 10월에 파문을 당했다...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토머스 제퍼슨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제안자,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 여기에 잠들다.” 미국 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묘비문을 스스로 지었다. 그가 평소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자신의 세 가지 업적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는 제퍼슨이 대통령을 지냈다는 사실이 포함되지 않았다. 제퍼슨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쓴 묘비문에 한 글자도 추가하거나 수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군자 삼락'을 이야..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어니스트 헤밍웨이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구나." "Pardon me for not getting up."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 ~ 1961년)의 능청스러움과 여유가 느껴지는 묘비문이다. 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 모습을 간결하게 표현하던 헤밍웨이의 문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하겠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헤밍웨이는 성격이 강인하고 거친 부분이 많아 제 1차 세계대전 때 의용병으로 이탈..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측천무후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 묘비문으로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은 비석을 무자비 (無字碑)라고 한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왕과 황제 가운데 단 한 명의 여자 황제가 있으니 그녀는 측천무후이다. 측천무후가 남편인 고종과 함께 묻혀 있는 중국 섬서성 시안 인근의 건릉에는 높이 8미터의 거대한 무자비 (無字碑)가 세워졌다. 이는 측천무후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그녀가 자신의 묘비에 아무런 글도 쓰지 말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의..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벤자민 프랭클린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 “인쇄업자 벤 프랭클린의 시신이 벌레의 먹이로 여기 누워 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늘 새롭고 우아한 판으로 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 - 1790년)의 묘비문이다. 프랭클린은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도 자신의 묘비문에는 고작 ‘인쇄업자 프랭클린’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그의 삶에서 인쇄업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천상병 시인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1930~1993년) 시인의 묘비문으로 새겨진 그의 대표 시 '귀천(歸天)'의 한 구절이다. 천상병은 1952년 '문예'에 시 추천으로 등단한 후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문단의 마지막 기인'으로 불리며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그는 “시인이면 그만이지 학력이 무슨 소용이냐”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