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1930~1993년) 시인의 묘비문으로 새겨진
그의 대표 시 '귀천(歸天)'의 한 구절이다.
천상병은 1952년 '문예'에 시 추천으로 등단한 후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문단의 마지막 기인'으로
불리며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그는 “시인이면 그만이지 학력이 무슨 소용이냐”며
서울대 상대 졸업을 목전에 둔 4학년 2학기 등록을
포기하는 등 평생 동안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1980년대 세간에서는 자칭 '걸레' 중광 스님과
소설가 이외수, 그리고 천상병을 '기인 삼총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천상병은 1967년 소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그 후로는 가난과
방탕, 주벽으로 일관한 삶을 살며 여러 일화를 남겼다.
부인 목순옥 여사의 천상병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고문의 후유증을 술로 달래며 살아가던 천상병은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져 서울시립정신병원에
한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목순옥 여사는 오빠의 친구인 천상병 시인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생을 바치기로 결심했고,
마흔세 살 노총각 천상병 시인과 서른여섯 살 노처녀
목순옥 여사는 김동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 후 목순옥 여사는 남편 천상병의 팔과 다리
역할을 했다.
매일 아침 세수는 물론이거니와 손발톱도 깎아주고
목욕도 시키는 등 헌신적으로 천상병을 건사했다.
또한, 목여사는 인사동에 찻집 '귀천'을 열었는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려는 뜻에서였다.
목여사가 운영하던 찻집 귀천(1호점)은 목여사
사후에 문을 닫았고, 지금 운영중인 귀천(2호점)은
목여사의 조카가 운영하는 찻집이라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 소풍 왔던 사람이다.
그의 대표 시 '귀천'은 생명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는 각 연의 첫 행을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고 있다.
자신이 하늘에서 왔으니 생명이 다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 귀천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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