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괜히 왔다 간다."
‘걸레’,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삶을 파격으로
일관했던 화가, 예술가 중광 스님의 묘비문이다.
권력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인생이든, 가난에
찌들었던 인생이든 모두 덧없는 것임을 명쾌하게
표현한 글귀라고 하겠다.
1935년생으로 중졸 학력의 중광 스님은 26세에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했으며, 조계종 종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등 잇따른 기행으로
1979년 10월에 파문을 당했다.
중광 스님은 승적을 박탈당한 후에도 나체 상태로
허리에 대걸레를 묶은 뒤 먹물을 찍어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공개하는 등 파계와 기행을
거듭했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서는 자칭 걸레 중광 스님과
소설가 이외수, 그리고 시인 천상병 등 3인을
'기인 삼총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들은 공동으로
시화집 <도적놈 셋이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중광 스님은 달마도 등 선화(禪畵)와 선시(禪詩)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으며, 글과 그림 외에도
김수용 감독의 ‘허튼 소리’,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 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세척제 CF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중광 스님은 갖가지 기행으로 국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외국에서는 형식과 틀에 구애 받지 않는
그의 파격적인 글과 그림을 높이 평가해 '한국의
피카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1979년 미국 버클리대학 잉스터 랭커스터 교수가
펴낸 책 ‘Mad Monk’의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미국의CNN, 일본의 NHK, 영국의 SKY Channel 등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2000년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괜히 왔다 간다’는
타이틀로 마지막 작품 전시회를 열었고, 2002년 3월
통도사에서 입적했다.
중광 스님이 스스로를 '걸레'라고 부른 것은 걸레가 모든
더러움을 닦아내고 자신을 더럽히는 속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인, 이단아, 파계승으로 불리며 종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 조차 아웃사이더 취급 받았던
중광 스님은 죽어서야 승적이 회복되었다.
"괜히 왔다 간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문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모습과 행동을 떠올려 미소를
짓게 하면서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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