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思無邪(사무사)를 人生(인생)의 道理(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무항산이무항심)을 治國(치국)의
根本(근본)으로 삼아 國利民福(국리민복)과
國泰民安(국태민안)을 具現(구현)하기 위하여
獻身盡力(헌신진력)하였거늘, 晩年(만년)에 이르러
年九十而知八十九非(연구십이지팔십구비)라고
嘆(탄)하며 數多(수다)한 물음에는 笑而不答(소이부답)
하던 者(자), 內助(내조)의 德(덕)을 베풀어준 永世伴侶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풍운아, 낭만적 정치인, 영원한 2인자, 5.16 설계자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김종필(1926 - 2018년)
전 국무총리의 묘비문이다.
그는 자신의 묘비문을 직접 미리 써두었다고 한다.
묘비문의 내용을 좀 더 평이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한 점 사악함이 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의 근본을 ‘무항산 무항심’에
두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평생의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김종필 전 총리는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하고,
고향인 충남 부여에 있는 선영의 부인 곁에 묻혔다.
장년층 이상의 국민들에게는 이름 보다 'JP'라는
영문 이니셜이 더욱 친숙한 김종필 전 총리는
특유의 유머와 비유를 곁들인 촌철살인으로
숱한 말들을 남기고 인구에 회자시켰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의반 타의반", "춘래불사춘",
"몽니부린다", "정치는 허업", "소이부답"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92세까지 장수하며, 나름의 명예와 권력을
다 누렸으니,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역시 90에 이르고 보니, 89살까지도
잘못 살았다는 고백을 통해 죽음 앞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이 무상함을 말하고 있다.
묘비문에 나오는 '사무사(思無邪)'는 '생각하는 바에
사악함이 없고 마음이 바르다'는 의미로, 공자가 시경에
수록된 300여 편의 시를 읽고 했던 말이다.
함께 새겨진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은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맹자에 나오는 글귀이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는
비유로,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김종필 전 총리만큼 한국 근대화 반세기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
5·16을 놓고 절대빈곤과 부패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혁명이냐, 아니면 민주주의 싹을 자른 군사 쿠데타냐의
논란부터,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문민정부의
토대가 된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까지
현대사의 굽이마다 그의 족적이 논란과 함께 뚜렷이
남아 있다.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영욕과 명암이 교차하고 있기에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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