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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에바 페론

물아일체 2023. 3. 27. 04:00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이제 내가 보이지 않고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아르헨티나인으로 남을 것이고

여러분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겁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에

자리한 레콜레타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에바 페론

(1919 - 1952년)의 묘비문이다.

 

에바 페론은 사람들에게 에비타(Evita)라는 애칭으로

더욱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데, 에비타는 '작은 에바

(Little Eva)'라는 뜻이다.

 

에바가 묻혀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묘지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녀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기간은 불과

8년 남짓이었고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에바는 전 세계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어렵게 살던 어린

사생아 시절에서부터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열정적인 활동을 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녀가 겪어야 했던 인생 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대초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 주인과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사생아를 낳았는데,

에바는 그 가운데 넷째였다.

그러나 에바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어린 시절 가난에 시달렸다.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15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해 삼류 배우를 시작으로

라디오 성우 등을 하며 이름을 알려 나갔다.

 

그러다 1944년 한 자선 모금행사에서 노동부 장관이던

육군 대령 출신의 후안 도밍고 페론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고, 에바는 194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안 페론의 유세에 동행해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하며

27세의 나이로 퍼스트 레이디의 자리에 올랐다.

 


후안 페론 대통령은 집권 후 외국 자본을 배제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복지 정책들을 쏟아냈다.

 

영부인 에바 또한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학교와 병원,

보육원을 지으며 빈민층을 위한 복지사업을 벌였다. .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대통령보다 더 사랑을 받던 에바는

1952년 7월 26일 백혈병과 암으로 33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한 달 동안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그녀의 유해는 후안 페론 이후 아르헨티나 정국의

격변에 따라 이탈리아로 보내졌고, 얼마 후에는

대통령 관저에 보관되었다가 결국 지금의 레콜레타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1976년 뮤지컬 <에비타>로

제작되었고, 1997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에서 마돈나가 부른 “Don't cry for me Argentina”

노래는 대 히트를 쳤고, 세계인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넘은 에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리지만, 20세기 초 세계 5위의

경제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까지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반복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이 지나치게 인기영합적인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편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https://youtu.be/KD_1Z8iUD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