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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소중한 인연(因緣)

물아일체 2019. 12. 12. 11:15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하면 떠오르는 피천득의 대표 수필 '인연'에 나오는

문장이다.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을 진솔하게 서술한

수필 ''은 교과서에도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설렘과 안타까움의 잔잔한 울림을 주었던 작품이다.

 

사람들이 피천득의 '인연'에 공감하는 이유는

자신들 또한 닿을 듯 말 듯 놓쳐 버린 인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 오래 머물며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인연 가운데는 까맣게 잊혀지는 인연도 있고,

어렴풋이 가끔 생각나는 인연도 있고,

늘 가슴 속에 자리잡은 인연도 있다.

 

국어사전에는 인연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를

의미한다고 나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인연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일 것이다.

 

有緣千里來相會 (유연천리래상회)

無緣對面不相逢 (무연대면불상봉)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한비자에 나오는 중국 속담이다.

가수 노사연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며

노래했듯 모래알 같이 많고 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는 인연이 있다.

인연은 거스른다고 거슬러지는 것이 아니며,

잡는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의 인연을 겁()이라는 단위로

설명하면서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오백 겁의 인연이

있다고 한다.

겁은 천지가 한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는데, 이는 천상의 선녀가 천 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내려올 때 날개 옷으로 커다란 바위를 한 번 쓸고

올라가기를 반복해 그 바위가 모래알이 될 때까지의

긴 시간이라고 한다

 

부모자식, 형제, 부부, 친구는 물론 같은 고향, 같은 직장,

같은 국민, 같은 사람이라는 관계가 맺어진 것은

전생에 수백 수천 겁 긴 세월의 인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그 인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모든 인연에 자비로운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白頭如新 傾蓋如故

(백두여신 경개여고)

어려서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사귀었는데도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친근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나오는 글귀이다.

인연이 아닌 사람은 천 번을 만나도 가까워지지 않고,

인연인 사람은 단 한번의 짧은 만남에도 가까워진다.

집착은 내려놓고 인연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즉, 인연 속에서 노력의 결과로 달라질 수 있다.

인연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시작되지만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한번 맺어진 인연을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는 것도 나요,

나쁜 인연으로 끝내는 것도 나인 것이다.

 

좋은 인연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지만, 나쁜 인연은 사람을 속박하고 어려움을 더욱

어렵게 한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다.

 

좋은 인연을 구하고 나쁜 인연을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 하는 비결이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원망하기 보다는 감사하고, 질투하기 보다는 격려하며,

짐이 되기 보다는 힘이 되는 좋은 인연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한 해를 보내며 지난 세월의 일들을 돌아보니

자연스레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고, 그들과의 인연을

반추하게 된다.                                                      

새해에도 부디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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