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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세월, 이제는...

물아일체 2019. 10. 21. 06:52

"어두운 자궁(womb)에서 태어나 어두운 무덤

(tomb)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삶이란 그 두 어둠 사이의 짧고 빛나는 순간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다.

 

光陰如箭 (광음여전)

一場春夢 (일장춘몽)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고 되돌릴 수 없으며,

인생은 봄날의 한바탕 꿈처럼 덧없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산울림이 부른

'청춘'이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다가 "어느새 가버렸네 푸르른 내 청춘..."으로

가사를 바꿔 흥얼거리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실소(失笑)를 머금은 적이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말 문신 우탁이 지은 늙음을 탄식하는 시조

탄로가(嘆老歌)이다.

늙는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할 삶의 조건이며 운명이다.

 

아직은 전철에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면

고마움 보다 어색함과 당혹스러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어느새 육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나라에서 공인하는 노인의 경계선에 이른 것이다.

 

그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들의

직업이 이제는 대부분 같아졌다. 백수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소중하게 쌓아온 지식과 정보와 경험도 이제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다. 올드 버전이 된 것이다.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

사람들은 백 년을 채워 살지도 못하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걱정 속에 살아간다.

 

이제는 인생의 배낭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무엇 보다 집착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백 살까지 살고 싶게 만드는 모든 욕심을 포기하면

백 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인 물질과 명성에 대한 욕심부터

내려 놓고 미움과 원망, 질투와 경쟁심, 불안감 

같은 것들도 남김 없이 버려야 한다.

남은 인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랑과 열정만을 챙기게 되면 삶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이제는 고독을 즐기며 사는 일에도 차츰 익숙해져야

한다.

자식들도 독립해 떠나고, 주위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난다.

부부마저도 어느 순간 한 쪽은 먼저 가버릴 것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혼자 가야 하기에 노년에는 고독에

대한 내성(耐性)이 필요하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니

가슴에 담아두고 있음만 못하다.

 

이제는 말을 좀 아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

노년에는 말 보다 사색을 즐기는 것이 좋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게 될 확률도 커지고,

좋은 뜻에서 하는 말도 다른 사람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잔소리나 간섭으로 들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으로 넘어가자.

 

求人一命 勝造七級浮屠

(구인일명 승조칠급부도)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칠층 석탑을 쌓는 것 보다 낫다.

 

死而不亡者壽 (사이불망자수)

죽어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이제는 나누고 베풀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그 동안 위와 앞만을 바라보며 자신과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옆과 아래, 이웃과 사회에도 따뜻한

사랑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

그 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몸은 비록 죽더라도 그 사람의 흔적은 남아서

세상 사람들이 기억한다면 그것이 곧 오래 사는 길이다.

 

이제는 젊은 날처럼 서두르거나 뛰지 않아도 된다.

노년의 생활과 마음에는 여유가 많다.

작고 사소하더라도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정을 갖고 배우며 여유로워진 삶의 공간을

채워가자.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고, 배우는 자세야말로 가장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노년의 즐거움이다.

 

열정은 노년의 고독과 우울, 무력감을 예방할 수 있는 

명약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지 않으며, 열정을

잃을 때 비로소 늙는다.

늙음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열정을 잃어버린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푸르름 일색이던 초목들이 어느새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봄 꽃 만큼이나 아름답다.

인생의 노년에 해당하는 가을은 쓸쓸하지만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다.

깊어가는 노년의 가을을 더욱 알차고 즐겁게 보내자.

가을은 금방 지나가고 겨울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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