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삼국지 9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조의 '조조삼소(曹操三笑)'

AD 3 세기 초 후한 말 삼국시대,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출전한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뒤, 겨우 군사 1천여 명과 함께 이릉으로 향했을 때의 일이다. 급하게 퇴각을 하던 조조가 이곳이 어디냐고 묻자 측근 장수가 대답했다. "오림 서쪽, 의도 북쪽입니다." 조조가 지세를 살펴보니 험준하고 숲이 울창했다. 이때 조조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군들이 웃는 이유를 묻자 조조가 말했다. "주유는 책모가 없고, 제갈량은 지혜가 부족함을 비웃었네. 나라면 이곳에 군사를 매복해 두었을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네" 그런데 조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쪽에서 복병이 쏟아져 나왔고, 적장 조자룡이 크게 외쳤다. "군사 제갈량의 영을 받들어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됐노라!" 갑작스런..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논어>와 <삼국지>의 '우도할계(牛刀割鷄)'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유(子遊)는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뛰어난 제자 열 명을 일컫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포함될 정도로 학문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자유는 노나라에서 읍재(邑宰)라는 하급 벼슬에 올라 조그만 읍인 무성을 다스리면서 공자에게 배운 대로 예악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자유를 만나러 무성으로 갔다. 그때 마을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割鷄焉用牛刀 할계언용우도)”라고 말했다. 공자가 이처럼 말한 것은 자유가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훌륭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무성과 같은 작은 읍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본심을 몰랐던..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조와 유비의 '종호귀산(縱虎歸山)'

유비는 여포의 배신으로 근거지인 서주를 빼앗긴 뒤 허창의 조조를 찾아가 의탁하고자 했다. 그러자 조조의 책사 가운데 한 사람인 정욱이 말했다. "유비는 큰 뜻을 지닌 영웅의 기개가 있습니다. 지금 그를 죽이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반면, 조조의 또 다른 책사인 곽가는 정욱의 말에 반대하며 말했다. "의탁해온 힘없는 유비를 명분도 없이 죽인다면 승상의 명예가 손상되고, 천하에 웃음거리가 되어 훗날 대업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두 책사의 상반된 진언에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따라 유비를 기꺼이 맞이하여 환대했다. 이듬해, 원술이 옥새를 가지고 기주의 원소를 찾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유비는 이 기회에 조조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고 조조에게 말..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황개의 '고육지책(苦肉之策)'

고육지책(苦肉之策)은 병법 36계 가운데 서른네 번째 계책인 고육계(苦肉計)와 같은 말이다. 고육지책 또는 고육계는 내 몸을 상하게 하여 거짓으로 적을 속이는 계책으로,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내가 받을 고통의 크기를 먼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적을 속이기 위해 제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고육지책에 자원하는 사람은 투철한 충성심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한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의 자객 요리(要離)의 고육지책은 유명하다. 사촌인 오왕 요(僚)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합려는 요의 아들인 경기(慶忌)가 후환이 될까 걱정이 컸다. 이때 합려의 신하 오자서가 요리라는 자객을 추천했는데, 요리는 경기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기 위한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와 '차도살인(借刀殺人)'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고사성어인 '차도살인 (借刀殺人)'은 병법서인 '36계'에 제 3계로 수록된 대표적인 계책이기도 하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로, 처리하고 싶은 상대를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려 끝장내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일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을 해치운다면 후환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남을 충동질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적을 제거하게 만든다면 목표를 달성함과 아울러 책임질 일도 없기에 차도살인 계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차도살인으로 국면을 전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 왕윤, 여포를 이용해 동탁을 죽이..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조와 '망매해갈(望梅解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조가 헌제를 왕으로 옹립하고 허도에 도읍을 정한 후 남쪽 원정에 나섰다. 남쪽에서 원술과 손책 같은 군웅들이 끊임없이 허도를 노리고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매우 더운 초여름이었다. 병사들은 오랜 행군에 지친데다 식수 부족으로 모두 심하게 갈증을 느껴 행군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조조가 소리쳤다. "저 너머에 커다란 매실나무 숲이 있다. 새콤한 열매가 잔뜩 열려 있을 테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장병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실을 생각하자 입안에 절로 침이 고여 다시 기운을 내서 행군을 할 수 있었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망매해갈(望梅解渴)'은 조조의 뛰어난 재치와 임기응변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람을 속인 예로써 지적되기도 한다. '망매해갈..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조자룡과 '간뇌도지(肝腦塗地)'

조자룡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무장으로, 자룡(子龍)은 그의 자(字)이고, 본명은 조운(趙雲)이다. 그는 8척의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지녔으며, 무예가 뛰어났는데, 특히 창을 잘 써 관우, 장비, 황충, 마초와 함께 촉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으로 불렸다. 조자룡은 원래 북평 태수 공손찬의 부하 장수였으나, 유비 휘하로 들어와 조조와의 전투에서 여러 번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성격이 원만하고 후덕하여 관우, 장비 보다도 오히려 조자룡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겹겹이 쌓인 조조군의 포위망을 뚫고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오는 장면을 보면 가히 명불허전이다. 후한 말 207년, 형주 자사였던 유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유종이 전권을 승계했으나, 심약한 그는 곧 조조에..

고전에서 배운다 / 제갈량과 사마의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에서 전반부의 두 축이 유비와 조조라면, 이들이 죽은 뒤 소설 후반부의 흥미와 긴장감을 이어가는 두 축은 제갈량(공명)과 사마의(중달)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삼국지는 가히 제갈량 전기라고 할 만큼 제갈량 찬가로 가득하다. 소설 속 제갈량은 신출귀몰한 전략과 사람의 마음까지 읽는 혜안, 진법은 물론이고 풍수부터 천문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제갈량은 촉 황제 유비와 유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활약을 하는데 반해, 사마의는 줄곧 위 황제들의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를 보필하면서, 손자인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제갈량과 사마의 두 책사를 비교할 때 사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