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령기에 이른 남녀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한 평생을 알콩달콩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결혼을 할 때는 누구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금슬 좋게 함께 늙어가기를 다짐하지만, 실제로 모든
남편과 아내들이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대 중국 역사 속에는 부부, 특히 남편이 부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상반된 두 가지
고사를 볼 수 있다.
< 송홍의 조강지처(糟糠之妻) >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광무제는 남편이 죽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누이
호양 공주가 안쓰러워 그의 새로운 배필을 찾아주기로
마음 먹었다.
광무제는 호양 공주가 신하들 가운데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의중을 떠봤다.
그러자 호양 공주는 태중대부 송홍(宋弘)을 칭찬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을 따를 만한 신하가
없지요.”
광무제는 호양 공주가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송홍과 호양공주를 맺어주고 싶었다.
송홍은 성품이 온후하고 강직한 신하였다.
그런데 송홍은 이미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며칠 뒤 광무제는 호양 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 놓고
송홍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의중을
살폈다.
"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 사귀던 친구를 멀리하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이는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는가?"
그러자 송홍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貧賤之友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빈천지교 불가망, 조강지처 불하당)
송홍의 말에 광무제와 호양 공주는 크게 낙담했지만,
그의 인물 됨됨이에 광무제는 송홍을 더 높게
등용하였으며, 호양 공주 역시 그 후에도 송홍을
흠모하며 존경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조강지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함께 고생한 아내를 일컫는 말이다.
유교의 영향으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왕조시대에도 조강지처에 대해서는 소중하게 생각해 왔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 오기의 살처구장(殺妻求將) >
송홍처럼 아내를 귀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인 일화도 전해진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기(吳起)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손자 또는
손무에 비견될 정도로 병법에 능했다.
그래서 오기는 76전 64승 12무의 전과가 말해주듯
싸웠다 하면 승리를 거두는 상승장군(常勝將軍)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노나라에 있을 때 인접한 제나라가 대군으로
침입했다.
이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왕과 대신들이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핵심은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출신 여인이기에
오기를 대장군으로 임명하면 제나라에 맞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오기는 이내 집으로 달려가
자기 아내의 목을 벤 뒤, 왕에게 가서 이제 자신은
제나라와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대장군에 임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오기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제나라 군대와 싸워
이번에도 크게 이겼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오기는 아내를 죽여 대장군 자리를
얻은 '살처구장(殺妻求將)'으로 불렸는데, 이는 명성이나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이따금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를 살해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게 되면 오기의 살처구장 고사성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2)이 하나(1)가 되어 부부로 산다는 의미에서
가정의 달 5월의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부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금슬지락(琴瑟之樂)의 부부화합과 백년해로를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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