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선(兵仙), 즉 군대를 운용하는 용병의 신선으로 불리는
한신은 초(楚)나라 출신으로 원래는 항우 밑에 있었으나
그 곳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자
한(漢)나라 유방의 진영으로 옮겨갔다.
소하의 추천으로 한나라 대장군이 된 한신은
탁월한 능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최후에는
해하에서 초패왕 항우를 물리침으로써 한 고조 유방이
진(秦)을 잇는 통일제국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신은 군수와 행정을 담당했던 소하, 전략가인 장량과
더불어 '서한삼걸(西漢三傑)'로 불리며 초한전쟁에서의
공을 인정받기도 했으나, 결국엔 모반을 획책했다는
죄로 죽임을 당해 토사구팽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다.
한신은 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 냈는데, 그 만큼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胯下之辱 (과하지욕) >
한신이 무명시절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과하지욕'은 성공을 위해서는 순간의 치욕을 참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이로 인해 한신은 '사타구니 무사'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훗날 대장군이 된 뒤 그 사내를 찾아내
자신에게 '참을 인(忍)' 자를 가르쳐 주었다며 돈과
직위를 주기도 했다.
< 漂母飯信 (표모반신), 一飯千金 (일반천금) >
빨래하는 아주머니가 한신에게 밥을 나누어 주었다는
'표모반신'과 그 한 끼 밥에 천금으로 보답했다는
'일반천금'은 어려운 사람에 대한 시혜와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교훈이 담긴 고사성어이다.
한신은 집안이 가난한데다 별 재간도 없어서 늘 남에게
얻어 먹고 사는 신세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그들 중 한 아주머니가 한신의 초라한 모습을 불쌍히
여겨 수십 일 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초한전쟁이 끝나고 초왕에 봉해진 한신은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아주머니를 찾아 천금을 주어 지난 날의 은혜에
보답했다.
< 國士無雙 (국사무쌍) >
'국사무쌍'은 한 나라에 최고의 장군이나 인재는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특정인의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칭찬의 말이다.
한신은 항우 밑에 있다가 도망쳐 유방의 진영으로
갔는데, 한신의 재능을 알아 본 유방의 측근 소하가
유방에게 한신을 대장군에 추천하며 했던 말이다.
< 聲東擊西 (성동격서) >
'성동격서'는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뜻이다.
초나라 항우의 지원을 받는 위나라 군대가 황하 동쪽에
진을 치고서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에 한신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소리를 지르며
훈련하게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곧 공격하려는 듯한
티를 내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은밀하게 별동부대를 이끌고 상류로
이동해 강을 건넜고, 신속하게 위나라 군대의 후방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 背水陣 (배수진) >
한신이 조나라로 쳐들어가자 조나라는 한신의 군대 보다
몇 배나 많은 대군을 동원해 방어에 나섰다.
한신은 1만여 군사로 하여금 강을 등지고 적과 맞서
싸우도록 했는데, 승리를 확신한 조군은 모든 병력을
동원해 한신의 군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한신의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웠고, 조나라 군대는 일단 철수해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의 진영 앞에 도착해 보니 성벽에는
한나라 군대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한신이 몰래 숨겨 두었던 3천여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텅 비어있던 조군의 진영을 차지해 깃발을 꽂은 것이다.
조나라 병사들은 성벽에 나부끼는 수많은 한나라 깃발을
보자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한신은 이들을 추격해
대승을 거두었다.
한신이 이처럼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배수진을
친 한나라 병사들이 조나라의 대군을 맞아 잘 버텨준
덕분이었다.
'배수진'이란 물러설 수 없도록 강을 등지고 적과 맞서는
전법으로, 목숨을 걸고 결연한 자세로 일을 추진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 明修棧道 暗度陳倉 (명수잔도 암도진창) >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스스로 초패왕이 된 항우는
유방을 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파촉의 한왕으로
분봉했다.
군세가 미약했던 유방은 이를 받아 들이는 수 밖에
없었고, 관중으로 다시 나올 의도가 없음을 항우에게
보여주기 위해 진령산맥 절벽을 따라 설치된 목조
잔도를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한신은 잔도를 수리하는 척 항우의
관심을 끌면서 비밀리에 진령산맥을 크게 우회해
진창으로 나온 뒤 관중을 기습했다.
한신의 이 같은 기습을 예상하지 못한 초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
'명수잔도 암도진창'은 겉으로는 파촉의 잔도를
수리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진창을 통해 적을
기습한 한신의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로, 위장공작을
수반하는 기습전략을 말한다.
< 多多益善 (다다익선) >
항우를 멸망시키고 천하의 주인이 된 한 고조 유방이
어느 날 한신과 장졸들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가 보기에 나는 병사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나?”
“폐하는 십만 명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한신 자네는 어떤가?”
“신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언짢아진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능력 있는 자네가 어쩌다 내 밑에 있는가?”
이에 "아차!" 싶어 한신이 얼른 유방의 기분을 풀어주려
대답했다.
“폐하는 장수 위의 장수인 '장상지장(將上之將)'으로,
병사를 거느리는 데는 능하지 못하지만 장수를 거느리는
데는 훌륭하십니다."
이 대목은 후일 한신이 유방으로부터 토사구팽의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 兎死狗烹 (토사구팽) >
한신이 해하전투에서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자 유방은
황제로 즉위한 후 공신들을 각지의 제후로 책봉했다.
그러나 유방은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한신을 경계했다.
결국 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임명되었다가 반란죄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한신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더니 천하가 평정되니 이제 내가 잡혀 죽게
되는구나!” 라며 토사구팽을 당하는 울분을 토했다.
한신은 회음후로 강등된 지 얼마 후 반란을 평정한
유방에게 축하 인사를 올리러 가자는 소하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다가 매복 중이던 무사들에게 붙잡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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