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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고사성어로 본 항우의 일생

물아일체 2022. 8. 26. 07:30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되어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승패를 겨루고 있는 전쟁이 있다.

바로 초한전쟁이 그것으로 우리가 두는 장기판 위에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만큼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비록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을 이뤘지만

사람들은 항우의 패배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항우(項羽)는 초나라의 대장군 항연의 손자로,

우()는 자()이며 이름은 적()이다.

 

모든 조건에서 유방 보다 한 수 위에 있었던 항우는

자신의 용맹함을 과신하고 독선과 아집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의 리더였다.

 

< 一擧兩得 (일거양득) >

 

'일거양득'과 '사면초가'는 항우 인생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라고 할 수 있다.

 

'일거양득'은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는

뜻이다. 절세미녀 우희(우미인)에게 많은 남자들이

청혼을 했는데, 우희는 커다란 가마솥을 집 앞에 두고

그 솥을 들어올리는 사내의 아내가 되겠다고 했다.

 

아무도 그 솥을 들지 못했지만 항우는 단숨에 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우희는 항우의 여인이 되었고, 소식을 전해들은

초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항우에게 모여 들었다.

 

항우는 가마솥 하나를 들어 올려 미인과 군사를

한꺼번에 얻게 되어 '일거양득'의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되었다.

 

< 破釜沈舟 (파부침주) >

 

'파부침주'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죽기로 싸우고 패배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항우는 조나라와 진나라 군대가 싸우고 있는

거록지역으로 가기 위해 황하를 건너자마자

취사용 가마솥을 부수고 타고 온 배를 가라앉혀

패할 경우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결의를 다졌다.

 

이에 항우의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해 거록을 포위하고 있던 진나라 장한 장군이

이끄는 대군을 괴멸시켰으니, 이 전투가 유명한

'거록대전'이다.

 

< 鴻門之宴 (홍문지연) >

 

홍문의 연회는 중국의 역사를 바꾼 술자리였으며,

초한전쟁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슴 졸이게 하는

명장면이다.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먼저 입성하자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단숨에 격파한 뒤 함양에서

멀지 않은 홍문에 주둔했다.

 

초나라 회왕이 함양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항우는 유방의 본심을

알아보기 위해 유방을 홍문으로 불렀다.

 

당시 유방은 항우에게 맞설 형편이 아니었기에

번쾌, 장량과 함께 홍문으로 가서 항우에게 굴욕적으로

사죄하는 척 연기를 했다.

 

항우가 홍문에서 연회를 베푼 것은 책사인 범증의

계략에 따라 유방을 죽이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의 비굴하고 아첨하는 말에 속아

끝내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연회 도중 유방은 볼 일을 보러 가는 척 하면서

홍문을 탈출했고, 유방이 달아난 것을 안 범증은

탄식하며 항우를 질책했다.

 

'홍문의 연'에서 유방은 항우에게 무릎을 꿇는 대신에

위기에서 벗어나 훗날 천하를 차지하는 기회를 얻었고,

항우는 거의 손에 들어온 천하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부터 '홍문지연'은 생사를 가를 만큼 가슴 졸이는

정치적 담판을 의미하게 되었다.

 

< 錦衣還鄕 (금의환향), 錦衣夜行 (금의야행) >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출세하고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금의환향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항우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해 진을 멸망시키자

사람들은 지세가 견고하고 땅이 비옥한 함양을 초나라의

새 수도로 삼고 인근의 관중을 발판으로 천하를 도모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항우는 "내가 공을 세웠는데 고향에 돌아가

자랑하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단옷을 입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며 함양 궁궐을 불 태우고

초나라의 작은 도읍 팽성으로 돌아갔다.

 

이 일화에서 '금의환향'과 함께 '금의야행'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 乾坤一擲 (건곤일척) >

 

초한전쟁에서 항우와 유방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다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기로 합의하고

싸움을 멈췄다.

 

항우는 포로로 잡고 있던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풀어주고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을 향해 철군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방도 철군하려 했지만 책사인 장량과 진평이

유방에게 진언했다.

"초나라 군사들은 지쳐 있는데다가 군량마저 바닥이

났다. 지금 치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승부수를 띠웠고,

항우를 추격해 해하에서 초나라 군사를 포위하게 된다.

 

그로부터 천여 년이 지난 당나라 때의 문인 한유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싸우던 홍구를 지나다가

'과홍구(過鴻溝)'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건곤일척’이 유래했다.

 

'건곤일척'이란 하늘과 땅을 걸고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승패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일컫는 말이다.

 

< 四面楚歌 (사면초가) >

 

'사면초가'는 적에게 둘러싸여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퇴각하던 항우의 군대는 해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병력은 부족했고 식량도 떨어진 상황에서 한나라

군사들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한나라 군대가 있는 곳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고 초나라 군사들은 크게 낙담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미 형세가 기운 것을 직감한 항우는 우희와 함께

슬퍼하며 '역발산 기개세'로 시작되는 '해하가'를 지어

시운이 따르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다.

 

결국 우희는 자결하고, 항우는 포위를 뚫고 오강까지

갔으나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유방의 군대와 맞서다

최후를 맞으니 초한전쟁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 捲土重來 (권토중래) >

 

당나라 시인 두목은 항우가 죽은 오강 변 정자에서

'제오강정(題烏江亭)' 시를 지어 해하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일단 강동으로 퇴각했다가 다시 도전하지 않고

서른 한 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을 아쉬워했다.

 

'권토중래'는 두목이 지은 시 '제오강정'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패했지만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오는 것, 즉 실패 후에 재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

보며 항우와 우희의 사랑과 죽음에 연민의 정을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