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姜太公)은 대략 기원전 12 세기경, 고대 중국
주(周)나라 문왕에 의해 발탁되어 그의 아들인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킨 뒤, 주나라 건국에 기여한
인물이다.
강상, 여상, 강여상, 태공망, 백가종사 등의 이름과
별칭으로도 불리는 강태공은 기다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반계수조(磻溪垂釣) ', 즉 위수 강변 '반계'라고
하는 곳에서 곧은 낚시를 드리운 채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일화는 유명한데,
그 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낚시를 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반계수조'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은 '반계'를 자신의 호(號)로
삼았으며, 자신이 쓴 책에 '반계수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강태공은 병법에도 능하여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법서라고 할 수 있는 '육도'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강태공은 중국 명나라 때 쓰여진 판타지 소설
'봉신연의'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봉신연의'는 영화
'봉신방'으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은(상)나라 시조인 탕왕이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칠 때 이윤, 비창 등의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듯이
주 문왕에게는 강태공이 있었다.
주나라 문왕이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 근처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의 형색은 남루했지만, 문왕은 그 노인과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고 있는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했다.
그 노인이 바로 강태공이었다.
문왕은 그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했고, 강태공은
문왕의 부탁을 수락했다.
문왕은 강태공이 자신의 아버지 태공이 "장차 성인이
와서 주나라를 크게 일으키게 할 것"이라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인물이라는 뜻에서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불렀다.
문왕의 스승이 되어 그를 보좌하던 강태공은 문왕의
아들인 무왕을 도와 은(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의
봉건시대를 열었으며, 강태공 자신은 오늘날의 산동성
지역을 봉지로 받고 제후에 봉해져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은 문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형편이 궁색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집에서 책과 씨름하면서 세월을
보낼 뿐 살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에 그의 아내 마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달아났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 부귀공명을
이루게 되자, 소문은 옛 부인 마씨의 귀에까지 전해졌고,
마씨는 강태공을 찾아와 자신을 다시 부인으로 받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태공은 물동이의 물을 마당에 쏟으며 말했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아보시오."
마씨는 당황해 하며 물을 동이에 담으려 했지만,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강태공은 말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이을 수 없는 것이요."
이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복수불반분
(覆水不返盆)'이다.
'복수불반분'은 엎지른 물은 돌이켜 담을 수 없다,
즉 한번 저지른 일은 되돌릴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엎지른 물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하게 된다.
보다 신중하고 현명하게 처신하여 훗날 '복수불반분'
이라며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늘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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