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한 무제의 마지막 사랑 이부인과 경국지색(傾國之色)

물아일체 2022. 7. 8. 07:56

한 무제는 한나라의 제 7대 황제로, 54년간 재위하면서

유교를 국교로 채택해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쳐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등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군주이다.

 

뿐만 아니라, 한 무제는 많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여인이 위부인과

이부인이다.

 

한 무제는 한 때 사랑하던 위부인이 세월이 흘러

얼굴이 일그러지자 후궁 가운데 미인을 구했지만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어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의 광대이자 가수인 이연년이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연년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한 무제의 총애를 받는 예능인이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라네.

그녀의 눈길 한 번에 성()이 기울어지고

그녀의 눈길 두 번에 나라가 기울어진다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줄 어찌 모르랴만,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것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은 이때 이연년이 부른 노래 '가인가

(佳人歌)'에 나오는 한 구절로,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미모가 뛰어난 절세미인을 의미한다.

 

이연년의 노래가 끝나자 한 무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세상에 그런 여인이 정말 있겠는가?”

 

이 때 곁에 있던 한 무제의 누이 평양공주가

“이연년에게 그런 누이동생이 있어요.”라고

귀띔해 주었다.

    

한 무제는 곧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불러들였다. 

이미 50 고개를 넘은 한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날아갈 듯이 춤을 추는 솜씨에 매료되었다.

 

이 여인이 바로 한 무제의 말년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부인(夫人)이다.

여기서 부인(夫人)이라는 호칭은 후궁의 지위를

나타내는 품계이다.

 

하지만 미인박명(美人薄命), 그녀는 아쉽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녀는 아들을 낳은 뒤

이내 병이 들었다.

 

이부인이 임종을 얼마 앞둔 날, 한 무제가 그녀를

찾아간 일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한 무제는 사랑하는 이부인의 얼굴을 그녀가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얼굴을 좀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부인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아들과 형제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며 말했다.

 

"부인은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고는 군부(君夫)에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병고로 소첩은 화장을 하지 못해 얼굴을

보여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요."

 

한 무제는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무제가 떠난 후 이부인의 친척들은 그녀에게

원망 섞인 말을 했다.

"잠깐 얼굴을 보여주고 친척들의 일을 부탁하면

더 좋았을 텐데, 황제께서 기분이 언짢았던 모양이에요."

 

이에 이부인은 마지막 기운을 다해 말했다.

"친척들을 생각했기 때문에 얼굴을 보이지 않은 거지요.

나는 천한 신분인데도 단지 용모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  

폐하께 총애를 받았습니다."

 

"색쇠이애이(色衰而愛弛), 미모로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미모가 사라지면 사랑도 식는 법입니다.

폐하께서 그렇듯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은 옛날의

곱던 내 얼굴입니다.

 

지금 병으로 인해 이처럼 보기 싫게 된 얼굴을

보셨다면 분명 기분이 더 상해서 형제들을 돌봐줄

마음이 없어졌을 겁니다."

 

과연 이부인의 말대로 그녀가 죽자 한 무제는 그녀를

몹시 그리워하며 황후의 예로써 장사를 지냈고,

종묘에도 배향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족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이부인에 대한 한 무제의 총애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한 무제는 이부인과 함께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가려웠다. 그러자 한 무제는 이부인의

머리에 꽂혀 있는 옥비녀를 빼서 머리를 긁었다고 한다.

 

이 일이 궁중에 알려지자 궁녀들은 모두 이부인처럼

머리에 옥비녀를 꽂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나라 안의 옥비녀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한 무제는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에게 궁형(거세형)을 내린 황제이다.

그런데,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게 된 배경에는

한무제가 사랑한 이부인의 오빠 이광리가 있다.  

한 무제는 이부인의 오빠인 이광리를 대장군으로

임명해 북방의 흉노 정벌에 나서게 했다.

그러나 이부인의 위세로 대장군이 된 이광리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참패했고, 휘하의 이릉 장군은

부하들과 함께 흉노에 투항하고 말았다.

 

한 무제와 조정 대신들은 패전의 책임을 이릉 장군에게

뒤집어 씌웠지만, 사마천은 이릉 장군을 변호하면서

이광리 대장군의 작전과 전략의 미숙함을 지적했다.

 

이에 분노한 한 무제는 사마천을 감옥에 가둔 뒤

사형에 처하도록 했는데, 이 당시의 사형수는

50만 전의 속전을 내거나, 궁형을 자청하면 사형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속전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사마천은 어쩔 수 없이

궁형을 자청했으니, 한 무제의 이부인에 대한 사랑이

결국 사마천의 궁형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