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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관용과 포용의 상남자 초 장왕과 불비불명(不飛不鳴)

물아일체 2022. 6. 21. 08:09

초 장왕은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제 22대 군주로,

지도자로서의 관용과 포용력, 유연성을 갖춘 춘추오패

가운데 한 명이다.

 

   < 삼년 간 날지도 울지도 않은 불비불명의 새 >

 

장왕은 왕위에 오른 뒤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매일

사냥과 주연을 벌였다.

몇몇 대신들이 간언을 했지만, 장왕은 오히려

"나에게 간언을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경고했다.

 

이런 생활이 3년이나 지속되자 조정에는 간신들이

들끓게 되었고, 국력은 나날이 쇠락해 갔다.

 

어느 날 장왕이 여느 때처럼 여인들과 놀고 있을 때

신하인 오거가 찾아와 말했다.

"수수께끼를 올리겠습니다. 언덕 위에 새가 있는데,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不飛 불비), 울지도 않습니다

(不鳴 불명). 이 새는 무슨 새입니까?"

 

이에 장왕이 대답했다.

"삼 년을 날지 않았으니 한번 날아오르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이고(三年不飛 將沖天 삼년불비 비장충천),

삼 년을 울지 않았으니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三年不鳴 鳴將驚人 삼년불명 명장경인).

수수께끼를 맞혔으니 물러가거라."

 

자신에 대한 풍자임을 알고 있는 장왕이 신하인

오거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암시를 준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왕은 계속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부 소종이 간언하니, 장왕이 말했다.

"내가 간언하는 자는 죽이겠다는 영을 내렸던 것을

듣지 못했는가?"

 

소종이 대답했다.

"이 한 몸 죽어 임금을 깨우치는 것이 신이 바라는

바입니다."

 

죽음을 무릅쓴 소종의 간언에 장왕은 이제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중단하고 정사를 살피기 시작했다.

 

장왕은 그 동안 짐짓 주색에 빠진 척하며 신하들의

행동을 살펴, 함께 일할 충신은 누구인지, 멀리해야

할 간신은 누구인지를 파악했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불비불명(不飛不鳴)'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 갓 끈을 끊어 포용력을 보여준 절영지연 >

 

'절영지연(絶纓之宴)'이란 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에 화가 나더라도 참고 

관대하게 용서해주거나 어려움에서 구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고사성어이다.

 

어느 날 장왕은 전장에서 돌아온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자신의 애첩으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했다.

 

밤이 깊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왕의 애첩이 소리를 질렀다.

 

"폐하, 누군가 소첩의 몸을 건드린 자가 있어 

그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얼른 불을 켜 범인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장왕은 오히려 촛불을 켜지 말라 지시하고는 

신하들에게 오늘은 모두 갓끈을 끊어 버리고 실컷

즐기자고 명령했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고 여흥을 즐기기

시작했고, 장왕의 애첩에게 손을 댔다가 갓끈을 끊긴

범인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3년 뒤 초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한 장수가 선봉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분투한 

덕분에 위기에 빠졌던 장왕이 승리할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장왕이 장수를 불러 "과인은 그대를 

잘 대해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리 열심히 싸웠는가?" 물었다.

 

장수는 3년 전 연회 때 술에 취해 왕의 애첩의 몸에

손을 대는 죽을 죄를 지었는데, 왕이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해 준 은혜를 갚은 것이라 했다.

 

장왕이 당시에 화를 참지 못하고 애첩의 몸을 만진

사람을 찾아내 처벌했다면 진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어려웠을 것이고, 춘추오패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 하찮은 사람의 간언도 받아들인 열린 마음 >

 

장왕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아랫사람의 충고조차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리더였다.


장왕은 지나칠 정도로 말()을 아끼고 좋아했다.

사람도 먹기 힘든 과일과 마른 고기를 먹이로 주고,

비단옷을 입혀 침대에서 자게 했다.

이 때문에 말은 운동 부족과 비만으로 죽고 말았다.

상심한 장왕은 죽은 말을 대부(大夫)의 예로써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라고 명령했다.

 

이에 신하들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악공(樂工)인 우맹이 나서서 말했다.

“말은 폐하께서 정말 좋아하신 영물인데,

대부의 예로 장사를 지내는 것은 너무 야박합니다.

임금의 예로 장사를 지내야만 합니다.

단풍나무로 최고급 관을 만들고, 옥으로 장식하십시오.

또한, 군사를 동원해 큰 무덤을 만들고, 다른 나라에

부고를 돌려 조문사절도 맞이해야 합니다.

 

제후들이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대왕께서 사람보다

말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통렬한 풍자에 장왕은 자신의 지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죽은 말은 삶아서 사람들이 나눠 먹고,

그 뼈는 그냥 땅에 묻어주라고 했다.

 

      < 태자에 대한 제대로 된 후계자 교육 >

 

어느 날 장왕이 태자를 궁으로 불렀다. 

태자는 마차를 달려 궁에 도착했는데, 급한 마음에

마차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궁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를 타고 궁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법을

어긴 것이다. 

 

이에 궁궐 출입을 관장하던 관리가 태자의 마차를

가로막고 세웠다. 

태자는 왕의 급한 부름을 받고 가는 길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담당 관리는 태자의 마부를

끌어내어 처벌하고, 마차의 끌채를 톱으로 잘라 버렸다.

 

신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태자는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아버지 장왕에게 그 관리를 처벌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장왕이 태자에게 말했다.

법령을 지키고 사직을 존중하는 자는 나라의 충신이다.

충신에게 벌을 줄 수는 없다. 

그런 충신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나라와 태자 너의

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국가를 유지하는 법령과 그 법령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하는 충신, 그리고 그런 인재를

중시하는 정책, 이 세 가지를 일러 '장왕의 삼보

(莊王三寶)'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