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周)나라는 기원전 1046 년부터 기원전 256 년까지
이어진 중국의 고대 왕조이다.
처음 도읍을 호경에 두었던 기간을 서주, 기원전 770년
뤄양(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를 동주라고 한다.
주나라가 도읍을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기게 된 데에는
스토리가 있다.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이 포사라는 미녀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은 결과이다.
포사는 포(褒)나라의 제후가 주나라 왕실에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되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주 유왕에게
바친 포나라 제일의 미녀로, 중국 역사에서 춘추시대의
문을 열게 한 여인이다.
주 유왕의 애첩이 된 미녀 포사는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좀처럼 웃지를 않았다.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포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백 필의 비단을 찢었지만 포사는 잠시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에 유왕은 포사를 제대로 웃게 하는 자에게는
천금의 상을 내리겠다며 신하들의 묘안을 구했다.
그러자 곽석보라는 신하가 말했다.
“거짓으로 봉화를 올렸다가 제후들이 허탕치고
돌아가는 장면을 보게 되면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왕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사와 함께
여산으로 가 봉화를 올렸다.
봉화가 오르는 것을 본 제후들은 적이 침입한 줄 알고
군사를 이끌고 밤새 달려왔으나, 유왕은 제후들에게
아무일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허둥지둥 달려온 제후들의 군사와 마차들이 거리에서
뒤엉키고, 헛걸음을 한 병사들이 맥이 빠져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 포사는 단순호치(丹脣皓齒),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처음으로 포사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본 유왕은
너무 기뻐서 거짓 봉홧불 놀이를 제안한 곽석보에게
약속대로 천금을 주고 벼슬도 높여주었다.
이 일화에서 '천금매소(千金買笑)'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천금매소는 천금으로 웃음을 산다, 즉 좋아하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 뒤로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수시로
거짓 봉화를 올렸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지만,
나중에는 거짓으로 장난치는 것이라 판단하고 무시하게
되었다.
포사의 치마폭에 휩싸인 유왕은 왕비인 신씨를 내쫓고
포사를 새로운 왕비로 삼았다.
그 뿐만 아니라 정비였던 신씨 소생의 아들 의구 대신
포사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 하지 태자 의구는
외할아버지인 신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분노한 신후는 북쪽의 오랑캐인 견융족을 부추겨
주나라의 수도 호경을 공격하게 했다.
다급해진 유왕이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거짓 봉홧불 놀이라고 생각한 제후들은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결국 유왕은 견융족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포사는
포로가 되어 끌려 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중국판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왕과 포사의
일화는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중국 역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호경에 침입했던 견융족이 물러간 기원전 770년,
폐위될 뻔했던 태자 의구가 왕위에 올라 도읍을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겨 동주시대를 맞게 되니,
동주는 낙양 일대의 작은 지역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나라 천자는 허울뿐인 왕으로 전락했고,
제후들은 저마다 자신이 천자를 대리하겠다며
패자가 되기 위해 전쟁을 일삼게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는 이 때로부터 약 350 년에 걸친
기간을 춘추시대라고 부르는데, '춘추'라는 명칭은
공자가 편찬한 역사서 '춘추(春秋)'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시대 초기에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천자를
받들고 외세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이 어느 정도
살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 명분도
옅어져, 제후국인 진(晉)나라가 조, 위, 한 세 나라로
분열된 기원전 403년부터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이 일상화되는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유왕과 포사의 경우처럼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무너지면 신뢰를 잃게 되고, 신뢰를 잃으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나라가 나라답게 바로 위해서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고, 국민의 세금이 권력자와 정치인의
사적인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 공사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일부 정치인과
권력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유왕과 포사의 천금매소
일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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