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웃을 수 있니..."
오래 전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입장이나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본다는 의미의
역지사지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자세이며 상생의
정신이다.
역지사지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다수와 소수,
사용자와 노동자, 갑과 을, 승자와 패자, 부자와
가난한 자, 선생님과 학생, 남과 여, 내국인과 외국인,
가족, 친구 등 모든 계층과 부류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반목을
해결하는 유용한 열쇠이다.
역지사지는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를 보기 위한 것이며,
상대방의 주장에 공감하기 위한 내 마음의
준비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평생을 두고 실천할 만한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논어의 이 문장은 '인간관계의 황금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결합된 한자가 보여주듯, 나의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관용 또는 배려의
뜻으로, 역지사지와 같은 개념이라고 하겠다.
이솝 우화 가운데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있다.
여우의 생일에 초대된 두루미는 뾰족한 부리 탓에
여우가 내놓은 접시에 놓인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두루미는 여우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입구가 좁은 호리병 속에 담긴 음식을 대접했다.
이번에는 여우가 음식을 먹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우와 두루미가 각자에게
편리한 접시와 호리병에 담긴 음식으로 즐겁게
식사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여우와 두루미의 경우처럼 서로
상대방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역지사지의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역지사지를 할 때는 단지 상대방이 처한 상황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이나 마음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나 편견이 해소되어 화도 덜 내게 되고,
괴로움과 섭섭함도 덜하게 되며,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기는 바라면서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데,
그것은 나는 이미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만 역지사지를 강요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이기적인 추태에 불과하다.
제 눈 속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든 티끌만
나무라거나,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편견 또한 역지사지를
어렵게 하고 갈등과 반목을 키우게 된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자아내는
을에 대한 갑의 횡포나, 극단적 노사 분쟁 또한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모르는 자기 중심적 사고의
결과라고 하겠다.
최근 우리나라는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탄핵 찬성과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고 규모도 커져 거의 내전
수준에 이른 것 같아 두려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평론가는 국민들 사이에 이미 심리적 내전이
시작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외침 보다 내전이 더 무섭고, 참혹하고, 후유증도
더 크고, 상대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오래 남는다.
외침의 경우 전황이 여의치 않아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 같으면 적들은 물러가고, 휴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전이 일어나면 사생결단으로 끝을 봐야
한다. 다른 어느 곳으로 퇴각, 철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깊어진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무엇 보다 필요할 것이다.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되돌아 보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만이
정답일 수는 없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지내온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에 대한 관용과 배려, 포용성이
발휘될 때 개인은 더욱 성숙해지고, 사회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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