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개인 또는 조직 사이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배신의 아이콘으로 서양에서는 예수를 로마군에
팔아 넘긴 가롯 유다를 꼽고, 동양에서는 삼국지의
여포를 꼽는다.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손에 든 여포는 삼국지를
통틀어 싸움을 가장 잘 하는 장수로 일컬어지지만
조그만 이익이라도 보이면 망설임 없이 배신을
행동에 옮긴 인물이다.
그는 동탁으로부터 적토마를 선물 받은 대가로 자신의
양아버지인 정원을 죽인 뒤 동탁의 양아들이 되었다.
그러나 미녀 초선을 이용한 왕윤의 미인계에 걸려
양아버지 동탁을 또 다시 죽인다.
여포는 동탁이 죽은 후 한 때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고, 어려울 때는 유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포는 유비 마저 배신했다가 마침내
부하 장수들의 손에 포박되어 조조 진영으로 끌려가
짧은 배신의 인생을 마감했다.
한 때 요동까지 영토를 넓히고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기도 했던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뒤
동생 남산, 남건과 갈등을 빚은 맏아들 남생의 배신으로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두고 맺은 굳은 약속이라
할지라도 견리망의(見利忘義), 서로의 이익 앞에
의리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기 일쑤이다.
굳은 약속을 쉽게 깨뜨리는 것을 구혈미건(口血未乾)이라
하는데, 입술에 묻은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배반한다는 의미이다.
굳은 약속이나 다짐을 의미하는 맹서, 맹약, 혈맹 등에
들어간 맹(盟)의 한자는 날 일(日)과 달 월(月)에 그릇 명
(皿)이 합쳐져 이뤄진 글자이다.
날 일과 달 월은 천지신명을 의미하고, 그릇 명은
맹서의식에 쓰기 위해 피를 담는 그릇을 의미한다.
춘추시대 제후들이 모여 맹세를 할 때는 천지신명께
제물로 바치는 동물의 피를 그릇에 담아 나누어 마시며
다짐을 했는데, 이 때 입술에 묻은 피가 곧 구혈(口血)
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믿음이 컸던 사람의 배신은 배신당한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심한 경우 트라우마가 되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운 집현전 학사들은 신숙주
뿐만 아니라 정인지, 최항, 정창손 등 여럿이었고,
이들은 사육신의 처형과 세조의 왕위 찬탈에
신숙주 보다 더욱 적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민심은 신숙주에게 훨씬 더 가혹했다.
신숙주의 지조 없음을 본 따 상하기 쉬운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고, 신숙주의 부인이
사육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은 신숙주를 원망하며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하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백성들 사이에 돌았다.
신숙주의 능력과 성품에 걸었던 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이 컸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배신의 역사는 오늘날의 정치현실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한 때는 심복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돌아서는
배신의 장면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를 당하는가 하면,
최근의 국정농단사건에서는 자신부터 살고 보겠다는
측근 참모들의 책임 떠넘기기가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거나
자신의 야망을 위해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띤다.
오죽하면 정치판에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는 없고,
이익을 좇는 동업자들만 있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올까 싶다.
배신으로 일어선 사람은 반드시 배신으로 무너진다.
상식과 정의가 아닌 권모술수와 꼼수는 결국 배신을
부를 수 밖에 없고, 그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불러 온다.
조폭 집단이나 약점이 많은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의
의리와 단합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배신과 관련된 최근 사회적 이슈의 하나가 조직의
내부고발이다.
내부고발이란 특정 조직의 구성원이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내부고발과 배신은 그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개인의 영달과 사익 추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구별된다.
선진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기 위해 호루라기를 부는 휘슬 블로어로
존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하고, 심지어 배신자로 낙인을
찍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는 조직운영의 투명성이 낮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의 그릇된 일체감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후진적 조직문화 탓이라고 하겠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민주화와 발전을 위해 내부고발자를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신분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 크고 작은 변곡점은 크고 작은 배신행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믿음과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폄하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치하되는 것이 배신행위이다.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비난을 받는 배신행위는
없어야 하겠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선의의 배신행위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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