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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물아일체 2018. 7. 10. 20:48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쏘아 올릴 때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지점에 위치해야 한다.

그 보다 조금만 더 지구에 가까워 구심력이 커지면

위성은 지구로 빨려 들어와 추락할 것이고,

반대로 조금 멀어져 원심력이 더 커지면 궤도를 이탈해

멀리 우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철새들이 대형을 이뤄 편대비행을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 멀리 날기 위한 요령이다.

앞에 나는 새들이 날갯짓으로 상승기류를 만들면

뒤에 나는 새들은 이에 편승해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있다.

새들은 효율적인 비행을 위해 최적의 위치를 찾아

수시로 자리바꿈을 하며 날아간다.

 

사람의 한자어 인간(人間)은 사람 인()

사이 간()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간격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결국 사이가 좋다, 관계가 좋다는 말은 거리 유지를

적당히 잘 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함께 멀리, 오래 가려면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久住令人賤 頻來親也疎 (구주영인천, 빈래친야소)

但看三五日 相見不如初 (단간삼오일, 상견불여초)

오래 머물면 사람이 천해지고, 자주 오면 친한 사이도

멀어진다

단지 사나흘만 봐도 서로 바라봄이 처음과 같지 않다

 

허물없고 친한 사이라도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처음의 반갑던 마음도

무뎌지고, 자칫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친한 감정에

흠이 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금만 뜸해져서 눈에서 멀어지면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서양 속담처럼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 있어서 존경 받을 사람 없고, 멀리 있어서

정 날 사람 없다고 한다. 가까이 하다 보면

무례해지거나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실망하게 되고,

떨어져 있으면 감정이 식어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의미이다.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유여자여소인 위난양야)

近之則不遜 遠之則怨 (근지즉불손 원지즉원)

공자는 "배움과 덕이 없는 여자와 아래 사람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게 굴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을 권했다.

 

아무리 친하고 편한 사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무례하게 대하거나 성의 없이 굴어서는 안되며.

예의로 배려해야 한다.

불가근 불가원은 곧 과유불급,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으며 엄함과 자애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중용을

지킨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무너뜨리고

와신상담의 고사성어를 완성했다.

구천은 공이 신하 범려와 문종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며 치하했다.

 

그러나 범려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월나라를

떠나며 문종에게 구천은 고생은 같이 해도

기쁨을 함께 나누지는 못할 인물이라고 말했다.

 

범려는 또한 구천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으로

표현하며 문종에게 토사구팽의 위험성을 알리고

함께 떠날 것을 권유했지만 문종은 망설이다가

결국 반역죄를 의심 받아 자결하고 만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우화가 있다.

겨울이 되면 고슴도치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

의지하려 하는데, 서로 몸을 기대면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멀리 떨어지면 추위를 견디기가 힘들다.

 

그들은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있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이야기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려주는 우화이다.

 

불가근 불가원은 단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 명예, 권력과 같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지나친 욕심으로

부와 명예, 권력을 탐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불가근 불가원은 이러한 끝없는 인간 욕망에 대한

브레이크라고 할 수도 있다.

추운 겨울날 욕심을 내어 난롯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을 수 있고, 겁을 먹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춥다.

 

손도 데이지 않고 따뜻함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지속적인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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