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미세먼지에 관심을 빼앗기고 있지만
매화, 산수유, 목련 같은 봄의 전령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남녘의 화신(花信)은
이어지고 있다.
머잖아 북상하는 꽃 소식을 서울에서도 접하게
될 것 같다.
일년의 사계가 시작되는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겨우내 죽은 듯 활동을 멈췄던 생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봄은 음양오행에서 목(木)에 해당하며, 방위로는
동쪽이고, 시각으로는 아침, 색깔로는 푸른 색이다.
또한, 봄은 인생으로 보면 소년기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궁궐을 배치할 때 세자의 거처를
동쪽에 두고 동궁(東宮)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불렀다.
세자는 다음 왕위를 이어갈 떠오르는 태양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에 반해 늙은 대비가 머무는 곳은 해가 지는
서쪽에 두고 서궁(西宮)이라 했다.
이은상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봄처녀'는
봄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가곡이다.
어느 폴란드 시인은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했다.
봄을 처녀에 비유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봄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계절인 점에
착안한 것 같다.
여자가 남자보다 봄을 더 탄다는 속설이 있는데,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된다고 한다.
봄이 되면 따뜻하고 강한 햇살로 인해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데, 여성은 남성 보다
일조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감성적 측면 또한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음양오행의 입장에서는,
‘목(木)'에 해당하는 봄에는 만물이 움트는
양(陽)의 기운이 충만하기 때문에 음기(陰氣)를 띤
여성이 남성 보다 더 민감해진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금(金)'의 계절인 가을에는
만물이 쇠잔해지는 음(陰)의 기운이 강해져
양기(陽氣)가 센 남성이 민감해지는 것이다.
一年之計在於春 一日之計在於寅
(일년지계재어춘, 일일지계재어인)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春不種則秋無穫 少不學則老無知
(춘부종즉추무확, 소불학즉노무지)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젊을 때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루, 일년, 일생에 있어서
그 출발과 시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당부했다.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나라는 결혼정책으로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으려 했는데, 원제 때 궁녀였던 왕소군은
공주로 위장해 흉노의 왕 선우에게 시집을 가
그 곳에서 불우하고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역사의 흐름 속에 '춘래불사춘'의 상황과 형편은
늘 있어왔다.
올 봄에도 소상공인, 미취업자, 비정규직들의
어려운 삶이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허탈한 가슴에는
'춘래불사춘'일 것이다.
계절의 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즐거워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제의 봄, 정치의 봄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겨울을 난 영산홍이
소담스런 꽃을 가지가 휠 만큼 많이 피웠다.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햇살 따사로운 오후엔 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밀려 오는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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