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국민 정서는 그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돈과 권력, 전관 등에 따라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상황에 따라 법의 해석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을
때였다.
병사들에게 군량미가 될 보리밭을 밟으면 참형에
처한다고 하여 모두들 조심스럽게 행군했는데,
마침 조조가 탄 말이 산비둘기에 놀라 그만 보리밭을
밟고 말았다.
난감해진 조조는 자신이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지
집법관에게 물었고 그는 “法不可於尊(법불가어존),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조조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처형을 대신했다.
거미줄에 잠자리 나비는 걸리지만 큰 새는 걸리지 않는
것처럼 법은 높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법(法)의 한자는 삼수변(氵)에 갈거(去)자가 합쳐져
이뤄졌다.
법은 집행에 있어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신뢰를 잃으면 사람들은 법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법 위반에 따른 제재를 부끄러워하기 보다
운이 나쁜 탓으로 돌리거나,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반발하기도 한다.
진나라의 개혁을 주도한 대표적 법가 사상가인 상앙은
태자가 법을 위반하자 法之不行 自上犯之
(법지불행 자상범지), 백성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위에서 이를 어기기 때문이라며 태자를 처벌하려 했다.
그러나 태자는 왕위를 이을 신분이어서 그를 직접
처벌할 수 없으므로 태자의 시종과 스승을 대신 처벌했다.
상앙이 법과 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쌓기 위해
나무기둥을 옮긴 사람에게 금 50냥을 주었다는
입목득신(立木得信) 일화는 유명하다.
또 다른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法不阿貴(법불아귀),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고 하여
법이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 없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나라의 백성들은 차츰 법을 신뢰하고 지키게 되었으나
지나친 법 만능주의는 백성들의 숨통을 조였고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의 상황에도 혹독한 법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자 처벌로 죽느니 차라리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백성들이 많아졌다.
진나라 멸망을 가속화시킨 최초의 농민 반란인
진승 오광의 난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다.
진나라의 뒤를 이어 천하를 다스리게 된 한나라 유방은
그 동안 시행해 오던 모든 법을 폐지하고 살인, 절도,
상해에 관한 세 가지 법만을 남기는 약법삼장
(約法三章)을 발표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흉악한 범죄가 늘면 법이 너무 물러서 그러니
형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법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이나 법전을
들고 있는 법의 여신 디케는 원래 눈을 가리고 있다.
오로지 법에 따라 공정한 집행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원에 있는 디케의 여신은 눈을
가리지 않고 실눈을 뜨고 있어서 법 앞에 선 사람이
전관예우를 해야 할 사람인지, 돈과 권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사람인지 다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우스개로 하는 소리이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잘못한 열 명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 없고 빽이 없어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한 명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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