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66세의 영조 임금은 왕비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새 왕비를 맞아들이기로 했다.
왕비 간택 절차의 하나로 궁중 어른들 앞에서 일종의 면접시험이 진행되었는데,
왕비 후보에 오른 규수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주어졌다.
다른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 같은 대답을 했지만 정순왕후 김씨는 "인심(人心),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다"고 대답하여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15세 정순왕후의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畵虎畵皮難畵骨 知人知面不知心
(화호화피난화골, 지인지면부지심)
호랑이를 그릴 때 겉모습은 그려도 그 속은 그릴 수 없듯
사람을 알고 얼굴을 안다 해도 그 마음은 알 수가 없다.
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
(해고종견저, 인사부지심)
바닷물이 마르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凡人
(상식만천하 지심능범인)
비록 알고 지내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 해도
마음까지 알아 주는 사람은 무릇 몇이나 될까.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 조차 모르는 때가 많은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대간 계층간 진영간에 깊어진 불신의 골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알기 어렵게 한다.
그러다 보니 시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고 사로잡는 방법 같은 책자들도 많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일이고 보니 거문고 소리를 듣고 친구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지교(知音之交) 일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높은
산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면
종자기는 "기상이 드높아서
태산과 같다.(高山,고산)"고 평했고, 흐르는 강을 떠올리며 연주하면 "흐름이 유장하여
장강과 같다.(流水,유수)"고 평했다.
백아는 자신의 연주 소리를 듣고 거기에 담긴 자기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종자기를
세상에 하나 뿐인 친구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리고는 두 번 다시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지음(知音)은 나의 소리를 듣고 나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거문고의 훌륭한 연주는 고산유수(高山流水)라 하여 지음과 동일한 의미로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화를 당한 경우도 있다.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가 한중 땅을 놓고 공방전을 벌일 때의 일이다
조조는 한중이 포기하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큰 실익도 없는 땅이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며
저녁으로 나온 닭 갈비를 뜯고 있었다. 그 때 마침 하후돈 장군이 들어와 군호(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물으니 조조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계륵(鷄肋)"이라고만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조의 참모 양수는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의아해 하는 장졸들에게 말했다.
"계륵, 닭의 갈비는 버리기는 아까우나 먹을 것도 없다, 승상께서는 한중 땅을 내주기는 아깝지만
별 이득도 없어 곧 철수를 명하게 될 것이다."
양수의 말은 적중하여 이튿날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조조는 양수가 자신의 의중을 지나치게 잘 헤아리는 재능을 갖고 있어 그를 경계했고,
결국 군율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를 들어 양수를 참수했다.
양수는 윗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은 알았으나 처신을 잘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 특히 윗사람의 마음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줘야 할 때가 있다.
최고 권력자나 조직의 리더에게는 배와 심장처럼 속내를 터놓는 측근 참모 즉, 복심(腹心)이
있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복심으로 불리는 자의 주변으로 모인다.
그러나 그 복심 역시 자칫 양수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對面共話 心隔千山
(대면공화 심격천산)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식당이나 찻집에 가보면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어도 상대방과 눈을 마주보며 대화하기 보다는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데 더 열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마음 따로 몸 따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간다
편리해진 인터넷과 SNS 덕분에 하루에도 적잖은 메일과 문자를 주고 받으며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공허하고 형식적인 메세지만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도, 권력으로 빼앗을 수도 없고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내가 거짓되면 상대도 거짓되고, 내가 진실하면 상대방도 진실하게 된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과 마음의 거리를 좁혀 이심전심으로 소통하는 것만이
서로의 마음을 아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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