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童心如仙" (동심여선)
어린이 운동의 창시자인 소파 방정환(1899 - 1931년)의
묘비문으로,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방정환의 묘는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있다.
묘비문으로 새겨진 童心如仙(동심여선)은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뜻으로, 어린 아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다.
'천국은 어린 아이의 것'이라고 여러 복음서에서
강조했던 예수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시인 워즈워드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방정환은 어린이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
유공자이다.
방정환은 서울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의 딸과 결혼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손병희의 사위가 된 방정환은 천도교를 통한 어린이
운동에 열성을 보였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청년 학생들과 비밀리에
자신의 골방에서 등사판으로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했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20년 일본 유학을 떠나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다.
방정환이 동경 유학 시절에 조직한 어린이 문제 연구
모임인 ‘색동회’에는 '어린이 날 노래'를 지은 윤극영을
비롯해 마해송, 윤석중 등이 가입하여 활동했는데,
현재도 색동회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방정환은 2년 뒤 고국에 돌아와 천도교 안에 정식으로
소년회를 조직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강연을 하는 등 어린이 운동을 본격화했다.
이때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월간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으며,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지정해
기념식을 가졌다.
5월 1일 어린이 날은 그 후 노동절과 겹치는 점을
고려해 5월 5일로 변경이 되었다.
또한, 방정환은 물타법(勿打法) 즉,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는 법의 제정을 주장해,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아동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은 당시만 해도 유교적 질서에서
그저 어른의 가르침이나 받는 객체에 머물러 있던
어린이를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체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방정환은 서른세 살의 나이에 고혈압으로 입원했는데,
죽던 날 저녁, “가야겠어. 문간에 검은 마차가 나를
데리러 왔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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