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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성소수자 레오나드 매트로비치

물아일체 2023. 5. 18. 04:00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군은 내가 두 명의 남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훈장을 주었고, 한 명의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전역시켰다."

(When I was in the military, they gave me a medal

for killing two men and a discharge for loving one.)

 

미국 워싱턴D.C. 컨그레셔널 국립묘지에 있는 예비역

공군 이등중사 레오나드 매트로비치의 묘비문이다.

그는 미국 현역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차별에 맞섰던 인물이다.

 

"한 베테랑(예비역) 게이"라는 문구아래 새겨진 그의

묘비문에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은 이름없는 많은 게이

베테랑들을 더불어 추모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레오나드 매트로비치는 공군 이등중사로 복무하던

1975년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는 편지를 써서 부대장에게

전달했다.

 

동성애자는 군 입대가 불가능했고, 복무 중 발각되면

불명예제대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군과 보수 사회를 향한 그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트로비치의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가족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9살이던 1962년 입대했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부상으로 상이기장 ‘퍼플하트’를 받았고,

동성무공훈장도 탔다.

 

매트로비치는 1960년대 군대 내 인종갈등 극복을 위해

군이 도입한 ‘인종 관계 개선 강좌’ 조교 직을 맡아

여러 부대를 다니며 강연에 참여했다.

 

동성애자로서 바로 자신이 차별의 피해자임을 자각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사청문회의 강제퇴역 조치에 맞서 소송을 냈고,

1980년 9월 연방지방법원에서 승소한다.

 

군은 항소하면서 매트로비치에게 다양한 협박과 함께

금전적 합의를 종용했다.

이에 그는 잔여 급여와 퇴직금 등 16만 달러를 받고

합의에 응했다.

보수적인 대법원까지 갈 경우 그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이즈 충격이 미국 사회를 휩쓸던 1980년대 중반

그는 에이즈 교육과 치료 캠페인의 선두에 섰으며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에이즈 보균자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결국 1988년, 44세의 나이로 숨졌다.

 

 

우리나라에서 군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 변희수 하사 자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은 뒤, 여군으로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였으나

거부 당하자 강제전역일 즈음 22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년 5월 17일은 성소수자의 날이다.

성소수자란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 신체 등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성소수자는 LGBT 혹은 퀴어(Queer)라고도 한다.

LGBT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

(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첫 글자를

딴 단어다.

퀴어는 본래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멸칭이었으나,

현재는 동성애자를 포함해 성소수자 전반을

포함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퀴어 퍼레이드에는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깃발이 사용되고 있는데, 무지개의 여러 색상은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다양성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