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나는 창조주께 돌아갈 준비가 됐다.
창조주께서 나를 만나는 고역을 치를 준비가
됐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윈스턴 처칠(1874 - 1965년)의 묘비문이다.
평소 유머러스하고 위트 넘치는 어록으로도 유명했던
처칠은 묘비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은
굴하지 않는 용기와 희망 넘치는 유머로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영국 국민들을 다독이며 승리를 쟁취했다.
처칠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장관으로 31년,
총리로 9년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했으며,
1953년에는 <제 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처칠은 2002년 영국 BBC가 시청자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칠은 어린 시절에는 그리 인정받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아이였으며, 성적은 언제나
바닥권이었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뛰어난 리더십과 선견지명으로
위기의 영국을 구해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영웅이지만 그에게도 그늘은 있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에서의 그의 작전 실패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에게 아주 큰 치명타를 입혔다.
당시 해군장관이던 처칠은 독일 제국의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전투를
강행했다가 25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혹한 실패를
했고, 처칠은 해군 장관에서 중령으로 강등당했다.
처칠은 최고의 달변가로 통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의 연설이나 스피치는 늘 청중에게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그만의 특유한 화법에다 여유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한 장 이상으로 된 보고서는 읽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말의 핵심부터 전하거나
듣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스피치는 쉽고 단문이
많다.
처칠이 했던 1941년 옥스퍼드대학 졸업식 축사는
유명하다.
처칠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연단에 올랐다.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입에서 나올 축사를
기다렸다.
처칠이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
힘 있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떼었다.
그러고는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보았고,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칠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그것이 축사의 전부였고, 말을 마친 처칠은 연단을
내려왔고,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자신이 했던 말처럼 처칠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도 황당한 괴변으로 국민들을
헛웃음 짓게 만드는 정치인이 아니라, 품위 있고
여유로운 유머로써 국민들을 미소 짓게 해주는
정치인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처칠의 유머 시리즈 >
■ 유머 1.
어느 날 처칠이 대중연설을 할 때 많은 청중들이 모여
환호했다.
그 장면을 본 한 여류 정치학자가 처칠에게 말했다.
"총리님, 청중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 기쁘시겠습니다."
그러자 처칠이 말했다.
"기쁘지요, 그러나 내가 교수형을 당한다면 두 배는 더
많은 청중들이 모여들었을 겁니다"
■ 유머 2.
의회 출석이 있는 날 자주 지각을 하는 처칠에게
야당 의원들이 질책을 했다.
그러자 처칠이 말했다.
"예쁜 마누라와 살다 보니 늦잠을 잡니다.
다음부터는 의회 출석 전날은 각방을 쓰겠습니다"
■ 유머 3.
처칠이 대기업 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과 대립하고
있던 어느 날, 의회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갔다.
마침 그 곳에는 노동당 당수 애틀리가 소변을 보고
있었고, 빈 변기는 그의 옆자리 뿐이었다.
그런데 처칠은 그 곳에서 소변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른 자리가 나자 비로소 볼일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애틀리가 그 까닭을 물었다.
"내 옆자리가 비었는데 왜 거기를 안 썼소?"
그러자 처칠이 대답했다.
"겁이 나서 그랬습니다.
노동당 사람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를 하려 드는데,
내 것이 국유화 되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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