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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물아일체 2023. 6. 22. 03:00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오직 한 순간만 나의 것"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들어 있는

엘리자베스 1세(1533 - 1603년)의 묘비문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으로 '천일의 앤'의

주인공인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국왕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유럽 변방의 조그마한 섬나라

잉글랜드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기초를 다진 통치자로 평가 받는다.

 

그녀는 어머니인 앤 블린이 간통과 반역죄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수형을 당한 뒤 궁중에서 늘 불안하고

위험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복 언니인

메리 1세의 재위기간 동안에는 종교적으로 탄압을

받기도 했고, 런던 탑에 갇히는 등 핍박과 살해

위기를 겪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열 살 전후에 일곱 개의 언어를

마스터해 구사할 정도로 어학과 문학부문에서

천재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연설문을 직접 작성하거나 사전에

미리 원고를 준비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람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해군 장병들에게 한 연설이다.

"나는 내가 연약하고 가냘픈 여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 말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했을 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기에 그녀의 결혼 문제는 국내외에서

당연히 핫이슈였다.

 

그녀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사람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결혼한 여왕으로 사느니 차라리

독신인 거지로 살겠다."며 거절했다.

 

그녀는 또한 잉글랜드 의회가 청원 형식으로 결혼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키자 "나는 이미 남편에게

봉사하고 있으니, 그분은 잉글랜드 왕국입니다."라는

역사에 남을 유명한 명언으로 그 청원을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기 때문에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으로 불렸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튜더 왕가는 단절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격파한 일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해적 출신인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지휘하는

함대를 출동시켰다.

영국 함대는 칼레 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해

영국이 해양 국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칼레 해전은 고대 그리스가 페르시아 해군을 물리친

살라미스 해전, 영국의 넬슨 제독이 프랑스 나폴레옹

함대를 물리친 트라팔가 해전과 더불어 ‘세계 3대 해전’

으로 꼽힌다.

여기에 이순신의 한산 대첩을 포함해 ‘세계 4대 해전’

이라 부르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시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프란시스

베이컨 등이 활동하던 영국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