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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죽는 날까지 조선을 사랑한 호머 헐버트

물아일체 2023. 7. 13. 04:00

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는 호머 헐버트의 묘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미국인었으나 평생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살았던 

호머 헐버트(1863 - 1949년)의 묘비에는 그의 유언이

적혀있다.

그의 유언대로,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닌

한국 땅에 묻혔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내한해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외교 자문을 맡아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그는 194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인종과 국경을 넘어

우리 땅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는 63년 동안 기독교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을 비롯하여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진력했으며, 한편으론 일본의 야만행위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출하려고 노력했다.


고종은 이런 헐버트를 크게 신뢰했다.

을미사변 이후 헐버트는 고종을 호위하고, 자문 역할을

하면서 서방 국가들과의 대화 창구 역할을 했다.

또한, 1903년부터 타임스와 AP통신의 객원 특파원을

지내면서 러일전쟁을 심층 취재하여 송고하기도 했다.

 

독립협회에서 발간했던 독립신문은 당시 인쇄소를

운영하던 헐버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발행이 불가했을

것이다. 그는 영문판 독립신문의 주필을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국으로 추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노골적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위협하자 고종은 위기를 벗어나고자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기로 했다.

 

고종의 밀지를 받은 헐버트는 미국으로 갔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 무렵 미국과 일본은 서로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카스라 - 테프트 밀약’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1907
년 7월, 헐버트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질타한 후 서울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헐버트의 조선 재입국을

불허한 때문이다.

 

어쩔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는 그곳에서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등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지원했으며,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각종 회의와 강좌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을 규탄했다.

 

1949년 미국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호머 헐버트

 

헐버트는 1949년 광복절을 맞아 국빈으로 초대되어

미국에서 배편으로 근 한 달이나 걸려 한국에 왔으나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에게는 무리한 여행이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인 8월 5일

기관지염으로 별세했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그의 장례식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으며, 

합정역 근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었다.

 

최근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헐버트의 건국훈장

서훈 등급을 1등급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캠페인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1950년 헐버트에게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는데, 헐버트가 받은 독립장의

서훈 등급은 3등급이다.

 

 

국가 유공자의 이름과 그들의 공적은 널리 알려야만

국민들이 그들을 존경하게 되고, 유공자 본인과

가족들도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공적사항이나 명단 조차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5.18 민주화 유공자나,

광복회라는 숭고한 단체를 자신의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았던 전임 광복회장의 일탈행위를 보면서 죽는 날까지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의 헌신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