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
토머스 모어(1478 - 1535년)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묘비문 문장이다.
모어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이자 대법관을 비롯한
여러 관직을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유토피아'를
쓴 문필가이기도 하다.
모어는 헨리8세가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당시 헨리 8세는 18년 동안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왕비인 캐서린과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천일의 앤'의
주인공인 앤 불린과 결혼을 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한 뒤 영국 국교회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그 수장이 되었다.
모어가 처형되던 날, 타워힐에 설치된 처형대에 올라간
그는 구경하려고 몰려든 군중을 향해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사형 집행인에게 자기 수염은 아무 죄가
없으므로 도끼를 받을 이유가 없다며 목은 자르더라도
수염은 자르지 말라는 농담을 건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토머스 모어의 죽음에 에라스무스는 "그는 눈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그와 같은 천재성을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애도했다.
에라스무스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모어의 집에서
'우신예찬'을 집필한 네덜란드의 카톨릭 성직자이자
인문주의자이다.
모어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난 1935년, 로마 교황청은
그를 정치인과 공직자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했다.
<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는 1516년에 저술한 책의 이름으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서양의
근대 유토피아 사상 형성에 맹아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보통 '이상향'으로 번역되는 '유토피아'가
그리스어 'ou'와 'topos'를 조합해 만든 합성어로,
'아무 데도 없는 곳'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모어가 그린 상상 속의 섬나라 유토피아는 농업에
기반한 공산국가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든 국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균등하게 배분하며, 잉여생산물은 공동창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죽도록 일을 하고도 굶주리거나, 무위도식하거나,
남들 보다 월등히 부유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는 금, 은과 같은 보석을 천하게
여기며,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금, 은으로 사슬 같은 것을 만들어 노예를
치장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러한 장신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에서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지만,
1박을 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머물고 있는 곳의 공동노동에도 참여해야 한다.
다만, 머문 곳의 재산 역시 공용이므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을 싫어한다.
하지만,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직접적인 전쟁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적극 이용한다.
또한, 용병을 고용하여 자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한다.
언뜻 보기에 공산사회를 찬양하는 듯한 '유토피아'의
내용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토머스 모어가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의 모델을 제시했다며 그를 열렬히
추앙했다.
그러나 모어가 공산체제의 유토피아를 진정한
이상향으로 보고 책을 쓴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체제에 대한 풍자적 의미로 썼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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