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증오하지 않으며,
땅을 위한 기도에는 저주가 없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일하고
여기서 죽으니까 우리 땅이에요.
땅의 주인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숫자가 적힌 서류로 주인이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반 발짝 물러 설 뿐이다.
결코 한 발짝을 온전히 물러서는 법은 없다."
"어머니가 고통과 두려움을 인정하면
톰 영감과 자식들도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런 감정을 부정하는 법을 연습해 왔다.
또한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족들이 먼저 살폈기 때문에,
어머니는 별로 웃기지 않은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은 차분함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을 향해 점점 익어간다."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미국의 존 스타인벡이
1939년 발표한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문장이다.
<영국인들이 비틀즈를 자랑하면 미국인들은 엘비스
프레슬리로 응수하고, 또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자랑하면 미국인들은 존 스타인벡으로 응수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존 스타인벡은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작가이다.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던 조드 일가가 산업자본주의와
대공황의 여파로 농장을 잃고, 일거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참혹한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앞날에 대한 희망만은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17세기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대표 화가
루벤스가 그린 '로마의 자비(시몬과 페로)'를
연상시키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감동적이다.
"아기를 유산한 딸 로자샨과 조드 가족은 홍수를 피해
들어간 허름한 헛간에서 굶어 죽어가는 늙은 노동자를
발견한다.
어머니와 딸 로자샨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본다.
이내 로자샨은 죽어가는 노인에게 다가가고 가족들은
자리를 피해준다.
딸은 노인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을 내어준다.
노인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벽을 바라보는 딸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비친다."
不患寡而患不均 (불환과이환불균)
不患貧而患不安 (불환빈이환불안)
부(富)가 적은 것 보다 분배가 고르지 않음을
걱정하고, 가난한 것을 걱정하기 보다 불안한 것을
걱정하라. <논어>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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