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사마천 8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치욕을 참아 청사에 이름을 남긴 사마천과 구우일모(九牛一毛)

사마천은 고대 중국 한나라 무제 때 태사령 직책을 지낸 사관이었다. 역시 태사령으로 한 무제를 모셨던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중국 고대부터 당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사기(史記)'의 완성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긴 채 죽었고,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저술에 착수했다. 사마천이 역사서 '사기'의 집필에 몰두하던 어느 날,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 무제의 명령으로 북방의 흉노족 정벌에 나섰던 이릉 장군이 휘하의 병사들과 함께 흉노에 투항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 무제와 조정 대신들은 이릉 장군을 비난하며 그의 죄를 문책하는 어전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사마천은 이릉의 과거 전공과 인품을 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한 무제의 마지막 사랑 이부인과 경국지색(傾國之色)

한 무제는 한나라의 제 7대 황제로, 54년간 재위하면서 유교를 국교로 채택해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쳐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등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군주이다. 뿐만 아니라, 한 무제는 많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여인이 위부인과 이부인이다. 한 무제는 한 때 사랑하던 위부인이 세월이 흘러 얼굴이 일그러지자 후궁 가운데 미인을 구했지만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어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의 광대이자 가수인 이연년이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이연년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한 무제의 총애를 받는 예능인이었다. "북방에 가인(佳人)이 있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라..

명작 속의 명문 / 보임안서(報任安書)

"사람의 죽음 가운데에는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 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소. 내가 보잘것없는 죽음 보다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이미 치욕으로 육신은 죽었지만 정신만은 살아서 청사에 빛날 역사서를 쓰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오." "나는 살아서 역사를 쓸 것이오. 황제와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중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고 그들로 인해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할 것이오. 나는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어 남겨 놓을 것이 없다는 것이 두려웠소."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쓴 한나라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치욕적인 궁형(거세형)을..

소신을 지켜 역사의 별이 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소신과 용기 있는 행동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신은 자신의 안위 보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내다 본다. 따라서 소신은 그 뜻이 의(義)와 공공선(公共善)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한낱 고집이고 집착일 뿐이다. 先義而後利者榮 (선의이후리자영) 先利而後義者辱 (선리이후의자욕) 명분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뒤로 하면 영광을 얻고, 이익을 먼저 취하고 명분을 나중에 생각하면 욕을 본다. 순자의 말이다. 得志 與民由之 (득지 여민유지) 不得志 獨行其道 (부득지 독행기도) 뜻을 얻으면 ..

클래식 단상 2018.07.08

부(富), 돈의 위력과 속성

한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와 권력의 유착,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 국민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 낸 사회적 현상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월나라 범려는 와신상담 고사에서 보여 주듯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 부차를 멸하고 그 공을 크게 인정받았지만, 토사구팽의 위험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제나라로 도망쳤다. 범려는 이름도 주공(朱公)으로 바꾸고 장사를 해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상신(商神)’, ‘재신(財神)’의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천금지자불사어시(千金之子不死於市),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죽을 죄를 지었어도 저잣거리에서 처형을 당하지 않으며, 도..

클래식 단상 2018.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