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소신과 용기 있는 행동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신은 자신의 안위 보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내다 본다.
따라서 소신은 그 뜻이 의(義)와 공공선(公共善)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한낱 고집이고 집착일 뿐이다.
先義而後利者榮 (선의이후리자영)
先利而後義者辱 (선리이후의자욕)
명분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뒤로 하면 영광을 얻고,
이익을 먼저 취하고 명분을 나중에 생각하면
욕을 본다.
순자의 말이다.
得志 與民由之 (득지 여민유지)
不得志 獨行其道 (부득지 독행기도)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나 홀로 그 길을 간다.
맹자 또한 의를 중시하는 소신으로 평생 동안
"I will go my way!"를 실천한 인물이다.
反者道之動 (반자도지동)
노자 도덕경에서는 거꾸로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道)의 운동성이라고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남들과 휩쓸리지 말고 소신을 갖고
반대로 행동하라."는 의미이다.
1848년 미국 서부에서 금이 발견되자
Fourty-Niner로 불리던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실제로 금을 발견해 부자가 된
사람은 거의 없고 돈을 번 것은 삽과 곡괭이를 만들어
팔던 사람들 뿐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주식이 좀 오르면 너도나도 주식시장으로
달려 가지만 정작 돈을 버는 것은 기관 투자자와
증권회사 뿐인 경우가 많다.
미국 오마하의 현인 억만장자 워렌 버핏은 "다른
투자자들이 탐욕으로 덤벼들 때는 두려워 해야
하고, 그들이 두려워 할 때는 탐욕을 가져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는 투자패턴을 강조했다
소신을 갖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 마저
던진 사람을 의인이라 부른다. 굳은 의지로 소신을
지켰던 의인들은 역사에 빛나는 별이 되고 한 줌의
소금이 되었다.
백이 숙제의 일화는 사마천이 사기 열전 70권 가운데
제일 앞 부분에서 소개할 만큼 의인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상나라가 주나라 무왕에 의해 멸망하자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
사마천은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고 했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어째서 굶어 죽어야 했는가.
한 평생 호강하며 편하게 천수를 누리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도척 같은 옳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하늘의 도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과연 하늘의 뜻이 있기는 한 것인가?"라고 썼다.
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女爲悅己者容 (여위열기자용)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의 말이다.
의리와 집념의 상징적 인물인 예양은 춘추시대 진
(晉)나라 지백을 주군으로 섬겼다.
그러나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가문을 멸족시켰다.
이로써 진나라는 한, 위, 조 세 나라로 분열되어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가 새롭게 도래했다 .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변소에 숨어 있다가
붙잡혔는데, 조양자는 예양의 지백에 대한 충성심에
감동하여 풀어줬다.
그러나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킨다는
칠신탄탄(漆身呑炭)을 하는 등 고통을 참으며
복수의 기회를 엿보았다.
예양은 다시 조양자를 죽이기 위해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또 붙잡혔다.
조양자도 이번에는 용서치 않았고 분노하며 꾸짖자
예양은 "지백은 나를 선비로 대우하였기에 나도 마땅히
선비의 예로써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양은 처형되기 전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벨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고 조양자가 겉옷을 벗어 주자
그 옷을 세 번 베어 복수에 갈음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양의 말과 행동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목숨을 건 진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擧世混濁 淸士乃見 (거세혼탁 청사내현)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고, 세상이 어지럽고 더러워져야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
논어에 나오는 글귀이다.
선비 정신으로 오백 년을 이어 온 조선에도 목숨을
걸고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맞섰던
사육신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소신에 찬사를 보낸 역사와 민심은
다른 한 편으로는 맛이 잘 상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을 바꿔 부름으로써 변절한
신숙주에 대한 비난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 속에서도 절개를
지킨 윤집, 홍익한, 오달제 등 삼학사나 경술국치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 임진왜란 때의
의병들이나 일제의 침탈에 맞섰던 독립투사들 역시
소신을 지킨 의인들이다.
흔히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하곤하는데, 이는 소신 없이 정권의 비위를
맞추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그들의 행태를 비웃는
말이다.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고 공자는 말했다.
넓고 편한 길을 마다하고 소신을 지키며 좁고 험한
길을 걸어 간 역사 속의 의인들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시대의 후손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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