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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이야기

그리스 신화 이야기 / 첫 날 밤 남편을 죽인 49명의 다나이데스

물아일체 2023. 12. 11. 04:00

그리스 남부 아르고스에 있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던

제우스의 연인 이오는 헤라의 질투 때문에 암소로 변해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로 건너갔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출현에 암소로 변한 이오

 

바로 그 이오의 손자이자 이집트의 왕이었던 벨로스는

지금의 이집트 영토뿐 아니라 그 주변의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죽을 때가 되자 자식들 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영토를 아라비아와 리비아로 나눈 다음 자신의

쌍둥이 아들인 다나오스와 아이깁토스에게 물려주었다.

 

형제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한 동안 우애롭게

지냈다.

그들은 특히 자식 복이 많아서 다나오스는 50명의

딸을 두었으며, 아이깁토스는 50명의 아들을 두었다.

다나오스의 딸들과 아이깁토스의 아들들은 각각

다나이데스와 아이깁티아데스라고 불렸다.

세월이 흘러 다나이데스와 아이깁티아데스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아이깁토스는 어느 날 다나오스에게 아버지가 물려준

영토를 핏줄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아들 50명과 다나오스의 딸 50명의

혼인을 제안했다.

다나오스는 아이깁토스의 이러한 제안이 자신의 영토에

대한 야욕 때문이라 생각해 혼인 제안을 거절했지만

아이깁토스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다나오스가 계속해서 제안을 거절하자 아이깁토스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 그를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나오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은밀하게 50명의 딸들과 함께 그리스의

아르고스로 망명했다.

 

그 후 다나오스는 우여곡절 끝에 증조할머니인 이오가

그곳 출신이라는 후광 덕분에 아르고스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깁토스가 50명의 아들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아르고스를 공격했다.

다나오스는 결사항전 했지만 결국 끈질긴 포위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이제 다나오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인 50명의

다나이데스를 아이깁토스의 아들인 아이깁티아데스와 

혼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나오스는 합동 결혼식 하루 전 딸들에게 은밀하게

예리한 바늘을 하나씩 건네주며 첫날밤을 치른 뒤

잠든 신랑의 머리를 찔러 죽이라고 명령했다.

 

첫날 밤 남편들을 죽인 49명의 다나이데스 자매들

 

딸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잠든 신랑들을 죽였다.

하지만 큰 딸인 히페름네스트라는 남편인 큰 아들

린케우스가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주었다고 해서

죽이지 않았다.

 

이튿날 자신의 형제 49명이 모두 죽은 것을 알게 된

린케우스는 복수의 일념으로 다나오스와 그의 딸들

가운데 히페름네스트라를 제외한 49명의 다나이데스를

모두 죽이고 아르고스의 왕위를 차지해버렸다.

 

죽은 49명의 다나이데스들은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영원히

밑이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 베르탱의 그림 '다나이데스'

 

여기서 '다나이데스의 물'이라는 용어가 유래했는데,

그것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 무의미한 일을 뜻한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다나이데스' >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 - 1917년)의

그림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 붓고 있는 다나이데스들의

표정에서는 고통스러운 저승의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찾아볼 수 없다.

 

고된 노역의 한 순간이지만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다나이데스들은 자유를 박탈당한 처지에 체념하지 않고

비장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그림 속 다나이데스들의 모습은 시시포스(Sisyphos)를

떠올리게 한다.

시시포스는 생전에 신들을 속이고 농락한 죄로

지하세계에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힘겹게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시시포스가 그 돌을 다시 올려

놓으면 또 굴러 떨어져 영원히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해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다나이데스의 물'이나 '시시포스의 바위'는 사무실과

공장 등에서 별다른 보람도 느끼지 못한 채

거의 같은 일을 무한 반복적으로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아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도 결코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삶은 과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나이데스와 시시포스 신화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목표에 속박되지 않는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