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돈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 휘하의
장군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 하후영의 후손이다.
그는 조조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 진영에 동참했다.
하후돈은 성격이 강직하고, 창술에 뛰어났으며, 조조와
한 집안이었는데, 일부 문헌에는 하후돈이 조조와
사촌지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이 다른 하후돈과 조조가 한 집안 또는 사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조조도 본래 성씨가 하후씨였는데, 조조의 아버지가
당시 실세 환관이었던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성이 하후씨에서 조씨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해 조조는 늘 하후씨를 일가로 여겨
자신의 주변에 중용했다.
하후돈은 매우 충성스러웠고, 조조와 수레를 함께 타는
참승(驂乘) 역할을 맡을 정도로 조조의 신임이 두터워
다른 장수들보다도 특히 중하게 대우를 받았으며,
주로 후방에서 거점 방어를 맡아 조조가 안심하고
나랏일을 할 수 있게 도왔다.
하후돈이 여포의 부하 고순과 결전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
몇 차례의 합을 겨룬 후 고순은 하후돈을 당하지
못할 것 같자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하후돈은
그런 고순을 뒤쫓았다.
이때 적진에 있던 장수 한 명이 고순을 돕고자 활을
당겨 하후돈에게 날렸고, 날아온 화살은 그대로
하후돈의 왼쪽 눈에 박혔다.
하후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즉시 손으로 화살을
뽑았는데, 화살과 함께 눈알도 뽑혀 나왔다.
그러자 하후돈은 "내 몸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아무것도 버릴 수 없다."고
크게 외치고는 뽑힌 자신의 눈알을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이러한 하후돈의 말과 행동은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는
공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후돈이 한쪽 눈을 잃은 이야기에서 유래한 '부정모혈
(父精母血)'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라는
뜻으로, 자식은 부모에게서 몸과 정신을 물려받았으므로
몸을 아끼고, 부모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고사성어이다.
조선 후기 근대화 과정에서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손발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선비와 유생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마저 크게 반발했던
것은 '부정모혈' 의식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한쪽 눈을 잃은 하후돈에게는 그 후 '맹하후(盲夏侯)'
즉, '맹인 하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후돈의 일화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내용으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서는 하후돈이
조조를 따라 종군했다가 갑자기 왼쪽 눈을 잃었다는
사실만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하후돈은 군중에 있을 때도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배웠으며, 재물이 생기면 주위에 아낌없이 나눠줄
정도로 성품도 청렴하고 검소해 백성과 부하들의
신임도 받았다고 한다.
건안 25년(AD 220년) 조조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위왕이 된 조비가 하후돈을 대장군으로 삼았으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하후돈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또한,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천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생을 일찍 마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 원인과 책임은 다양하겠지만, '부정모혈'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온전히 잘 지키고 지켜주는 일은
국가와 사회와 우리 모두가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시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항우와 두목의 '권토중래(捲土重來)' (2) | 2023.10.02 |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제갈량의 '아심여칭(我心如秤)' (2) | 2023.09.18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공자와 안회의 '단사표음(簞食瓢飮)' (0) | 2023.08.21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한명회와 '송도계원(松都契員)' (2) | 2023.08.07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노숙과 여몽의 '괄목상대(刮目相對)' (0) | 202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