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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배운다

고전에서 배운다 / 정지상의 한시 '송인(送人)' 감상

물아일체 2022. 2. 21. 08:53

정지상은 12세기 고려 중기 인종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5살 때 대동강 강물 위에 노니는 오리를 보고

누가 새 붓을 들어 강물 위에 을()자를

써놓았을까? (何人把新筆 乙字寫江波, 하인파신필

을자사강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 한시 ‘송인(送人)’도 과거에 합격하기 전

청년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정지상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과 함께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묘청의 난에 가담했다가 진압군 사령관인 김부식에게

체포되어 참살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래 자신의 글재주가 정지상에게

못 미치는 것에 늘 열등감을 갖고 있던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구실로 문적(文敵)이자 정적(政敵)

정지상을 처형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지상의 글 재주 앞에 김부식이 망신과 굴욕을

당했다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온다.

모짜르트와 그의 천부적 재능을 넘어설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질투했다는 살리에르의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 送人 송인 (1) >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 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 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 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 첨록파)
비 개인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른데
남포에서 임 보내니 노랫소리 구슬퍼라.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 마를 수 있으랴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임을 보내는 정한(情恨)이 담긴 7언 절구의 한시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애송되는 이별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푸른 강둑과 파란 강물의 아름다운 색조를 대비해

그려내고 있으며, 이별의 슬픔의 정도를 강물에

비유하고 있다.

대동강이나 남포와 같은 구체적 지명의 사용은

향토적인 정서를 더해준다.

 

정지상이라는 남성이 지은 시이기는 하지만,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정적 자아는 여성인 것도 특징이다.

 

정지상의 시 '송인'은 봄날 남포에서 이별을 노래한

7언 절구의 시 '송인 (1)'이 유명하지만,

같은 제목으로 쓴 가을 버전의 5언 율시 '송인 (2)'도

전해온다.

< 送人 송인 (2) >

庭前一葉落 (정전 일엽낙)
床下百蟲悲 (상하 백충비)

忽忽不可止 (홀홀 부가지)
悠悠何所之 (유유 하소지)

뜰 앞에는 낙엽 하나 떨어지고

평상 아래 온갖 벌레 슬피 우는데
그대는 홀홀히 머물지 않고

유유히 어디로 가셨는지요.

 

片心山盡處 (편심 산진처)

孤夢月明時 (고몽 월명시)
南浦春波綠 (남포 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 부후기)

한 조각 마음은 산자락을 좇고
달 밝은 밤이면 외로운 꿈을 꾸지요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지면
임이여 다시 온다는 약속 저버리지 마오.

마지막 두 구절을 보면 '송인 (1)'과 '송인 (2)',

두 편의 시가 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봄에 남포에서 임과 이별할 때 내년 봄에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움 더해가는 가을이 되자 작품 속 여인은

떠난 임이 지난 봄날 약속한 대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
송인 (1)'과 '송인 (2)' 시를 보면 정지상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년년(年年)’, ‘홀홀(忽忽)’, ‘유유(悠悠)’와 같은

단어들의 사용이 그렇다.

작가는 이처럼 동어반복을 통해 시의 의미와 효과를

더한층 고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