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은 12세기 고려 중기 인종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5살 때 대동강 강물 위에 노니는 오리를 보고
“누가 새 붓을 들어 강물 위에 을(乙)자를
써놓았을까? (何人把新筆 乙字寫江波, 하인파신필
을자사강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 한시 ‘송인(送人)’도 과거에 합격하기 전
청년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정지상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과 함께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묘청의 난에 가담했다가 진압군 사령관인 김부식에게
체포되어 참살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래 자신의 글재주가 정지상에게
못 미치는 것에 늘 열등감을 갖고 있던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구실로 문적(文敵)이자 정적(政敵)인
정지상을 처형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지상의 글 재주 앞에 김부식이 망신과 굴욕을
당했다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온다.
모짜르트와 그의 천부적 재능을 넘어설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질투했다는 살리에르의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 送人 송인 (1) >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 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 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 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 첨록파)
비 개인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른데
남포에서 임 보내니 노랫소리 구슬퍼라.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 마를 수 있으랴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임을 보내는 정한(情恨)이 담긴 7언 절구의 한시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애송되는 이별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푸른 강둑과 파란 강물의 아름다운 색조를 대비해
그려내고 있으며, 이별의 슬픔의 정도를 강물에
비유하고 있다.
대동강이나 남포와 같은 구체적 지명의 사용은
향토적인 정서를 더해준다.
정지상이라는 남성이 지은 시이기는 하지만,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정적 자아는 여성인 것도 특징이다.
정지상의 시 '송인'은 봄날 남포에서 이별을 노래한
7언 절구의 시 '송인 (1)'이 유명하지만,
같은 제목으로 쓴 가을 버전의 5언 율시 '송인 (2)'도
전해온다.
< 送人 송인 (2) >
庭前一葉落 (정전 일엽낙)
床下百蟲悲 (상하 백충비)
忽忽不可止 (홀홀 부가지)
悠悠何所之 (유유 하소지)
뜰 앞에는 낙엽 하나 떨어지고
평상 아래 온갖 벌레 슬피 우는데
그대는 홀홀히 머물지 않고
유유히 어디로 가셨는지요.
片心山盡處 (편심 산진처)
孤夢月明時 (고몽 월명시)
南浦春波綠 (남포 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 부후기)
한 조각 마음은 산자락을 좇고
달 밝은 밤이면 외로운 꿈을 꾸지요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지면
임이여 다시 온다는 약속 저버리지 마오.
마지막 두 구절을 보면 '송인 (1)'과 '송인 (2)',
두 편의 시가 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봄에 남포에서 임과 이별할 때 내년 봄에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움 더해가는 가을이 되자 작품 속 여인은
떠난 임이 지난 봄날 약속한 대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송인 (1)'과 '송인 (2)' 시를 보면 정지상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년년(年年)’, ‘홀홀(忽忽)’, ‘유유(悠悠)’와 같은
단어들의 사용이 그렇다.
작가는 이처럼 동어반복을 통해 시의 의미와 효과를
더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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